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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Jul 04. 2023

열일곱번째 길. 시도와 결과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되는 것이 도다.
一陰一陽之謂道
- 주역 계사전 -


주사위 던지기 놀이에서 떨어지고 굴러가며 결과를 향하가는 상황과 멈추어서 윗면의 숫자를 보여주는 상태는 이 놀이에 꼭 필요한 두 측면이다.

이때 움직이는 주사위는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멈춰진 주사위는 더 이상 다른 결과를 시도하지 않는다. 일의 시도와 결과는 서로 엇갈리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일을 진행시킨다. 


앞에서 세계의 뚜렷한 현실들과 희미한 그 사이를 대비시켰고, 일을 통해서 이 두 측면들이 리듬을 타고 일어난다고 했다.

세계에는 서로 대비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대항들이 많이 있다. 밤과 낮, 더위와 추위, 남자와 여자, +전하와 -전하, 풍요와 빈곤, 하늘과 땅, 등등. 이런 항들은 어떤 때와 장소에서만 나타난다. 


그러나 일에서 뚜렷함과 희미함의 교차가 만드는 리듬은 모든 일에서 나타나는 기초적인 대비다.

위에서 열거한 다른 대비들은 일의 내용에서의 상대항인 반면, 뚜렷한 현실과 희미한 사이의 대비는 일의 진행 방식에서의 상대항이다.

일이 진행하면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양 측면인 것이다. 

희미함과 뚜렷함은 음양이나 노자의 무(無)와 유()처럼 세계의 바탕에 있는 상호의존적 대립이다.  


일의 진행에서 뚜렷함이란 구분되는 내용과 자리가 확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희미함은 내용과 자리에서 불확실하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일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확고함에 머무르지 않고 불확실한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필요하고,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도전을 확고하게 만드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두 과정은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강약의 리듬을 만들면서 교차하게 된다.


앞으로는 이 강약의 리듬을 일의 시도와 결과라고 부를 것이다.

원인과 결과도 일과 밀접한 짝이지만 과거지향적인 반면, 시도와 결과는 미래지향적이다.   

또한 시도는 희미함(노자의 '무'나 들뢰즈의 '잠재성'이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보어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개념이 서로 상반되지만 이 둘을 다 써야만 원자세계의 이상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입자성과 파동성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란 것이다. 보어의 말을 빌리면 "입자와 파동 현상들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일지라도, 원자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일상적 언어로 애매모호함이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둘 다를 상보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 소광섭, 「보어의 상보성 원리」,『과학사상』18, 1996, 가을 : 180∼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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