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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Sep 13. 2023

스물일곱번째 길. 그렇게 일어나는 일과 이야기

겨울이 다가오자, 작은 들쥐들은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들쥐들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말입니다.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 동화 <프레드릭>* 중에서 -



우리는 만들어진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동화,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노래, 전설 등등 많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언제나 다시 만들어져서 들려온다.

사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들도 뻔한 이야기에서부터 심각한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충격적인 이야기처럼 각양각색으로 생겨나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 동화 속 주인공 프레드릭처럼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일들이 지나가버렸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수집품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 다시 쓰인다.


역사를 배울 때 흔히 지나 일들을 통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말다. 역사는 지나간 일들이 남긴 이야기들다.

지나간 일들은 그때 그 곳에서 그렇게 일어났지만, 남겨진 역사는 언제 어디서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형태로 공유할 수 있다.


일은 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일어난다. 일이 이야기가 될 때 '그때 그 곳에서'는 빠져도 되지만, '그렇게'는 어떻게든 남아야 다. 이야기는 '그렇게'를 주로 전하고 전할 수 있다.

100년 전에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기록만 잘 되어 있다면, 그 옆동네에 살던 사람에게 전해진 이야기나 지금까지 전해진 이야기나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별 일 아닌 것으로 지나쳤지만, 지금에는 아주 중요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역사를 배우고 활용한다는 것은 '그렇게' 일어난 일을, '또 그렇게' 되풀이 하거나 또는 '그렇지 않게' 하는 것다.

이야기는 일에서 '그렇게'를 위주로 만든 가상다. 가상이기 때문에 전달하기 쉽고, 또 배우고 활용할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각각의 일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이어질 수 있다.


이야기는 변형되기 쉽다. '그렇게'가 전해지면서 '매우 그렇게' '그럴려고' '그리하여' '그럴듯하게'처럼 약간씩 바뀔 수 도 있고, 아예 '이렇게 저렇게' 변형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의 일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일어난 일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일어났으면 하는 일, 일어나면 안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야기들은 서로 잇고 겹치기 쉽다. 반복되는 일들은 겹쳐져서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고, 현실에서는 이어지기 힘든 일들이 상상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새로운 소설이나 노래가 나왔고,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는 방법도 새로워진다.


인류 역사는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해온 역사다. 관습이나 문화나 제도도 이야기의 형태로 공유되고 강화되어서 작동다. 인류가 이야기를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편리한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있기 전에도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전해졌다. 감각은 주변에 대한 이야기이고 본능은 이끌려가는 이야기다.


자연의 일과 이야기에도 '그렇게'는 중요한 요소다. 법칙은 특정한 조건이 그렇게 갖춰지면 어김없이 다시 그렇게 일어나는 이야기다.

자연에도 일과 이야기를 구분할 수 있는 내용을 표시하는 자연의 언어가 있다. 그런 구분도 언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일들과 이야기들을 각각 '그렇게' 구분짓고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눠진 여럿도 일과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종래의 우주 역사는 에너지에 많은 관심을 둔다. 얼마나 많이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조적으로 이 책에서는, 우주의 물리적 역사의 주인공은 정보다. 궁극적으로 우주에서 정보와 에너지는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에너지는 물리계가 일을 하도록 한다. 정보는 무슨 일을 할지 말해준다.**


정보의 비는 끊임없이 우리 위로 내리고 있다. 그 빗속에는 인공적으로 생산된 정보, 즉 컴퓨터와 정보기술의 산물인 사이버-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방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자연적인 정보의 비이다. 우리는 안테나를 세우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이 단지 눈을 뜨기만 하면 된다. 주위의 풍경을 한번 생각해 보라. 주위를 둘러볼 때 당신이 보는 것은 엄청난 양의 정보이다.***



* 레오 리오니, 최순희 옮김, <프레드릭>에서 발췌, 시공주니어, 1999.

  (대문사진) <프레드릭> 표지, 예스24에서 따옴.

**  세스 로이드, 오상철 옮김, <프로그래밍 유니버스> 66쪽, 지호, 2007.

***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전대호 옮김,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 26쪽, 승산,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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