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그리고 언어, 논리, 윤리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 위키백과 -*
위키백과에 들어가 첫 머리에 나오는 정의를 보면 궁금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철학에 대해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아래에 있는 자세한 설명과 연관된 단어들을 한동안 읽고 나면 다시 수만 갈래 길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위키백과는 언어의 편리함, 언어의 한계, 그 속에 잡아 두고 싶은 세계의 모습, 그 모습을 알고 공유하려 하는 인간의 노력까지 잘 보여준다. 이용자가 스스로 더 나은 정의와 설명으로 바꿔가는 위키백과처럼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정의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돌기둥 길
동물들의 삶에 대한 본능적인 이해에서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철학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편적인 경험들과 생각들에서 보다 일반적인 생각들을 이끌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경험의 일반화에 대한 흥미로운 소설이 있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의 주인공 푸네스는 제목 그대로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푸네스는 하루에 겪은 일을 모두 기억하기에 기억한 하루 일을 재구성하는 데에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포도 덩굴에 달린 모든 포도알과 포도줄기를 감지하고, 한 번 본 숲의 모든 나무와 각각의 나무에 달린 모든 나뭇잎을 기억한다. 그러나 푸네스는 서로 다른 개들을 '개'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손을 보고 매번 놀라곤 한다.**
푸네스의 기억처럼 단편적인 경험들은 비슷할 수는 있지만 세세하게는 모두 다르다. 모양, 움직임, 색깔, 냄새 등이 똑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이 세세한 차이를 뛰어넘어 '먹이'나 '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철학적 사고는 각기 다른 경험을 연결하여 단순하게 이해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적과 동료, 먹이와 물, 환경과 이동, 짝짓기와 새끼 등에 대한 경험들을 서로 연결시켜 현재의 판단과 선택에 활용해야 한다. 이러한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들을 엮어서 사용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발전시킨다면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발생한다.
나는 철학을 삶에서 얻은 경험들과 생각들을 엮어서 활용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려 한다. 그리고 삶이 계속되듯이 새로운 경험과 이해도 도처에서 생겨나기에 철학도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인류가 쌓아온 학술적인 철학들은 추상적이고 심오하지만 그 시작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철학자들의 고민 끝에 도달한 세계관이 일상에서 비춰지는 세계의 모습과 달랐고, 그 새로운 생각들을 새로운 언어들로 표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말들로 쌓아 놓은 철학의 성벽은 철학적이지 않다. 철학은 고립된 생각들, 고립된 삶, 고립된 세계를 이어주는 학문이기 때문이다.성벽 아래로 길을 내어야 한다.
*위키백과(한국) ‘철학’ 항목의 첫부분 (2023년 5월 22일 검색)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단편소설 모음 <픽션들> 중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발췌, 민음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