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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May 24. 2023

네번째 길. 철학의 욕심

철학이란 제한된 언어로 무한한 우주를 표현하려는 시도다.
- 화이트헤드 - *



성산일출봉에서



경험들과 생각들을 연결하고 간추려서 활용하는 것은 모든 학문에서 쓰는 방법이다. 철학이 다른 학문들과 다른 점은 어떤 간추린 생각의 의미를 계속 다시 묻는다는 것이다. 

공원에 산책나온 개를 바라보는 동물학자와 소설가와 법률가와 철학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물학자는 개의 본능과 사회성에 대해, 법률가는 반려견의 산책시에 지켜야할 법 규정이 적절한지에 대해, 소설가는 반려견과 주인의 감동적인 우정의 이야기를, 철학자는 개의 인식과 사람의 인식의 차이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다. 


철학자는 생각의 연결 범위를 무모할 정도로 확장한다. 동물과 사람과 감각과 언어의 문제를 서로의 연관 속에서 묶으려 한다.

철학자는 생각의 범위를 백과사전처럼 넓히면서도 주제를 단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바위와 생물과 삼각형이 뜬금없이 존재라는 이름으로 단순화되어 '존재는 무엇인가'하는 질문 속에서 같이 다뤄질 수 있고, 각각의 '여러 존재들은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같이 다뤄질 수도 있다. 그러다 갑자기 존재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철학자가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일까?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철학이란 제한된 언어로 무한한 우주를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철학은 삶과 세계에 대한 생각들을 가능한 한 넓게 연결하면서 가능한 한 단순하게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결국 다양한 삶의 경험들에 넓게 퍼져 있는 공통된 원리를 찾는 일이 된다. 적용범위에서 최대한으로의 확장과 표현방법에서 최소한으로의 압축이라는 두 역설적인 목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달성하는지가 그 철학의 효율을 말해준다.


단순한 경험, 단순한 사실은 없다.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확실해 보이는 사물과 사건들도 고도의 감각작용을 거친 상상을 포함한 결과다. 또한 사물들과 사건들의 세밀한 연결고리는 우리에게 숨겨진 채로 보여진다. 

단편적인 정보들의 나열로 세계를 봐서는 정보의 과잉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된다. 습관적인 또는 사고를 통한 해석 작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들은 그 중요도에 따라 정리되고 강조되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관심에 따라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과학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이론을 만드는 작업에는 상상을 통한 가설의 수립이 포함되는데, 철학은 과학과 달리 특정 분야에 한정된 가설이 아닌 보다 확장된 가설의 수립으로 나아간다.

철학도 주로 다루는 주제에 따라 여러 세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존재론,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언어철학, 종교철학, 과학철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누가 어느 주제에서 시작하더라도 철학의 연결본능으로 인해 확장하면서 만나게 된다. 설령 그 확장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철학자라 하더라도, 확장의 한계 설정에 대한 주장이지 확장 방향에 대한 거부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주장'도 일반화하여 적용한다는 점에서 압축성과 확장성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어와 생각 자체에는 이미 압축성과 확장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철학은 이 언어와 생각이 본래 가진 두 방향의 성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생각과 언어와 몸과 물질의 연결은 세계를 이어지게 만들지만, 그 이어지는 과정은 정확히 관찰되지 않는다. 이런 보이지 않는 연결은 철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과학에서 이런 확인되지 않는 연결과정에 대한 설명은 일단 보류하게 된다. 그래서 물리학과 생물학과 심리학은 과학적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철학의 욕심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렴풋이 경험할 수는 있지만 정밀하게 확인할 수는 없는 일들에 대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것이 철학이 아직 필요하고 철학을 찾는 이유다.


삶은 언제나 안정적이고 확인된 요소들과 함께 이해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요소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에 따라 언어와 이론 또한 언제나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한계에서 포기하고 머물렀다면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언어, 같은 이론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철학은 바로 이 경계에서 다시 길을 찾는 생각의 모험이다.  



북극 바다에 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다. 곤의 길이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하는데, 붕의 등도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붕이 떨치고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면 비로소 남극의 바다로 옮아갈 수 있게 된다. 남극 바다란 바로 천지인 것이다. …

매미와 작은 새가 그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펄쩍 날아 느릅나무 가지에 올라가 머문다.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는 수도 있다. 무엇 때문에 9만 리나 높이 올라 남극까지 가는가?"

가까운 교외에 갔던 사람은 세 끼니의 밥을 먹고 돌아온다 해도 배는 그대로 부를 것이다. 백 리 길을 가려는 사람은 전날 밤에 양식을 찧어 준비한다. 천 리 길을 가려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아 준비한다.**



A.N. Whitehead, 「Autobiographical Notes」 중에서.

https://mathshistory.st-andrews.ac.uk/Extras/Whitehead_Autobiography/

**  장자, 김학주 옮김, <장자> 36~39쪽 제1편 ‘소요유’ 중에서, 연암서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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