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우리
나의 너 너의 나 나의 나 너의 너
항상 그렇게 넷이서 만났지
-동물원 <나는 나 너는 너>-*
함께 있다고 하면 여러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상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자녀들이 모여 있으면 가족이 되고, 선생님과 학생들, 책상과 의자, 책과 칠판이 모이면 학교가 된다. 여러 종류의 원자들이 모여 물질을 만들고, 여러 물질들이 모여 큰 물건들을 만든다. 땅과 바다, 공기와 생물들이 모여 있으면 생태계가 되고, 태양과 지구, 금성과 화성 등이 모이면 태양계가 된다.
이렇게 세계에는 여러 존재들이 모여 있고, 서로 가까이 만났다가 떨어지면서 여러 일들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블록 놀이를 재밌게 하고 있는 어떤 아이가 있다. 아이에게는 많은 블록들이 함께 있다. 아이는 조금씩 모양이 다른 블록들을 이렇게 저렇게 쌓아보면서 마음에 드는 모양을 만들어 본다.
아이는 여러 블록들과 함께 있고 각각의 블록도 다른 블록들과 아이와 함께 있다. 이때 블록들도 아이처럼 이 놀이를 재미있게 즐기고 있을까? 블록들에게 아이와 블록 놀이를 함께 함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함께 있음에는 구성원들이 모여 있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측면이 함께 있다. 아이는 그 측면을 느끼면서 블록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블록 놀이에 참여하는 블록들은 아이와는 다른 상황에 있을 것이다. 블록들은 아이와 중력의 힘에 의해 위치를 바꾼다.
아마도 아이에게 재미를 주는 블록들의 배열이 블록들에게는 의미있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블록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들은 분명 블록에 전달되고 감지되고 있다. 블록에게 함께 있음이란 원자들의 결합상태와 물리적인 힘들의 전달과 반응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물질에게도 함께 있음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주위 원자들의 배열과 힘의 교류에서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한다. 공존은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주지만 그 의미는 각 구성원들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세계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체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말들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벽돌집은 벽돌들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처럼 허전하게 들린다.
여기에 충분히 많은 벽돌들과 재료들이 있다. 이 재료들이 그냥 쌓여 있을 수도 있고 멋진 집으로 있을 수도 있다.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까?
*김창기 작사 작곡, 동물원 3집 <나는 나 너는 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