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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Apr 18. 2024

마흔네번째 길. 상황과 반응 사이

예술가는 논리학자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 화이트헤드 -*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된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먹는 일을 계속 미루면서 지속할 수는 없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그에 맞는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영양분에 담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특히 동물은 몸을 움직이고 격한 반응을 하는 데에 많은 영양분을 쓰고 있.

상황에 반응한다는 것은 상황을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을 자연에 또 다른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부자연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유연함으로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 그동안의 방식을 제시하는 측면과 함께 또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동물들의 진화는 반응의 여지를 넓혀 왔다. 상황파악하는 눈치는 추가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라 동물의 기본 감각이, 반응을 자주 바꾸는 변덕은 특이한 성격이 아니라 동물의 기본 성격이다. 좋게 바꿔 말하동물의 삶언제든 예술적이다. 방향만 바꿔도 그의 세계는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눈치, 변덕, 예술은 묘하게 통한다. 새로운 요소에 대한 민감함,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꿔보는 시도, 더 나은 상황 속에 머무름.

그러나 무름은 임시방편이다. 상황은 무한하게 다양하고 변덕도 무한하게 다양하다. 동물의 변덕이 무한할 수 있는 이유는 무한한 상황들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변덕과 마음의 변덕과 상황의 변덕까지 더해지면서, 동물의 삶은 고도의 예술을 향해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뇌는 눈치와 변덕의 기관이다. 동물의 상황파악과 활동영역은 분자들과 세포들에 비해 거시적이다. 그렇게 거시적일 수 있는 이유는 감각 현상이라는 정보의 거시적인 종합과 근육을 통한 거시적인 운동 조절 덕분이다. 거시적인 일의 진행에서 세세함은 생략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거시적인 파악과 활동의 확고한 진행에는 뇌의 신경세포들에서 일어나는 분자와 세포 수준의 미시적활동이 있다. 주어진 자연과 직접 만나서 대응하자연은 구체적이고 미세한 활동들인 것이다.

뇌에 수많은 신경세포들이 있는 것은 상황과 반응 사이에 아주 복잡하면서 유연한 경로들을 마련해 놓기 위해서이다. 이 중간 경로들을 바탕으로 거시적인 눈치와 변덕이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신경세포의 신호들은 말초의 감각신경에서 시작해서 뇌의 복잡한 경로를 거쳐 다시 말초의 운동신경으로 전달된다. 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영양분들의 유용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이 세세한 흐름거시적인 차원에서 곧바로 개입할 수는 없다.


눈치와 변덕은 뇌의 좁고 복잡한 미로에서 어떤 탈출 경로를 일일이 안내하는 방식으로 상황과 반응 사이에 끼어든다. 감각신경의 신호들은 뇌로 모이며 정보의 종합에 쓰인다. 뇌에서는 정보들이 종합되면서도 신호들의 흐름이라는 일의 끈을 잠시도 놓치지 않고, 반응으로 향하는 다양한 경로들 중에서 종합된 정보에서 도출된 특정 경로로 가는 길로 신호를 유도한다.

이렇게 뇌는 에너지의 흐름과 정보의 흐름을 병행시키며 눈치와 변덕의 기관으로서 준비된 능력을 예술적으로 발휘한다. 자유 의지의 결단은 준비된 능력과 장치 무시한 거시적인 비약이다. 예술의 고난한 길은 아름다운 결과에 취해 잊혀지 쉽다.




신체의 역할은 진화선상에서 볼 때 '감각-운동 능력'이다. 신체의 근본 기능인 신경계와 뇌는 본래부터 인식을 향한 것이 아니라 외적 자극을 수용(감각)하고 거기에 반응(운동)하는 것이 체계화된 것이다...

하등동물이 주로 접촉에 의해 행동한다면 고등동물은 시각과 청각에 의해 삶을 영위한다. 시각과 청각은 동물에게 더 많은 행위의 선택지와 숙고할 시간을 남겨준다. 동물에게 남겨진 독립성과 비결정성의 영역은 사물들의 수와 거리를 선천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칸트의 감성 형식이란 베르그손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다름 아닌 이러한 고등동물의 행동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유기체가 복잡해짐에 따라 생리적 작용들은 세분되어 신경세포들이 나타나고 점차 고차적인 방식으로 조직된다. 고등동물에서 신경계는 현저히 복잡해지는데 이는 외적 자극에 다양한 반응으로 응답할 수 있게끔 무한한 길을 열어 준다. 동물은 이와 같은 무한한 선택지로 인해 자극이 반응으로 연장될 때 충분히 숙고할 수 있다. 뇌수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뇌피질의 감각세포들은 척수의 운동기제들을 자발적으로 취하여 반응을 선택하는 작용을 할 뿐이다. 즉 그것은 자극을 '분석'하고 행사할 운동을 '선택'한다. 뇌수는 여러 방면에서 오는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적절한 곳에 연결해 주는 '중앙전화국'과 같은 것이다.**



* 화이트헤드, 오영환 옮김, <관념의 모험> 401쪽, 한길사, 1997. 

** 황수영, <베르그손, 지속과 생명의 형이상학> 65~67쪽, 이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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