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흐른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
세계의 이어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주로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시계를 멈춰도,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흘러간다.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어 하지만, 사실 시간이 흘러가도 다른 시간이 또 오기에 시간 자체가 아쉬운 것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다시 주어진 시간에서 여러 상황들이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어짐과 달라짐은 같이 다닌다.
공간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데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간은 시간과 달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지구는 드넓은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 떠다니는 배에 바다의 위치를 표시할 수 없듯이, 지구상의 위치는 흘러다니는 배의 한 부분이다.
땅과 건물들을 만드는 입자들은 시시각각 서로 이어지며 달라지고 있다. 다행히 그 입자들의 달라짐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정 범위로 수렴해서 떠다니는 지구를 다시 재구성하고 있다.
어렸을 적 매일 같이 다니던 곳에 오랜만에 가보면 익숙함과 낯섬이 교차하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희미한 흔적 하나라도 다시 찾으려 미궁의 사건 현장을 찾은 수사관의 심정은 더 야속할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방향은 이어지는 방향 밖에 없다. 공간을 움직일 때도 그렇고 가만히 있을 때도 그렇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이어지는 방향으로 실제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방향이라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가고 있고 갈 수 밖에 없는 방향이다.
그나마 이어지는 방향들 가운데서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새로운 자리에 나타난다.
이어지면서 함께 있고, 이어지면서 만나고, 이어지면서 생각하게 되고, 이어지면서 일하고, 이어지면서 달라진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것은 이어 나감의 방향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도 흘러가고 공간도 흘러가고 나도 흘러간다. 그래서 모든 일은 세계의 역사 속에서 대체할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는 고유한 자리를 갖게 된다.
실재는 구체적인 이것 또는 저것으로 존재하는 개별적 실체가 아니라, 그렇게 실체화되거나 구체화되기 이전의 운동성 또는 활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 또는 저것으로 규정되는 자기동일적 사물이 아니라, 매 순간 자기 아닌 것으로 변화하는 사건이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자경,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37쪽, 김영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