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 문정희 「사랑해야 하는 이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는 빈부격차를 상징하기도 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냄새는 사회가 그은 선을 무시하고 침투하는데, 실제로도 냄새는 침투성이 강해서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영화 <기생충>은 공존과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냄새는 여럿이면서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세계를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시각은 여럿으로 구분된 세계를 잘 보여주고, 소리는 세계의 순간적 변화를 잘 느끼게 해주고, 맛은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냄새는 저쪽에서 오면서도 직접적이서, 여럿인 동시에 하나인 세계의 모호한 측면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있다는 것은 뭔가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냄새처럼 잠시 동안에도 수많은 연결고리들이 언제 어디서나 이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듯이, 그 연결고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자들의 얽히고 섥힌 사건들은 구분된 여럿으로 보였던 사물들도 경계선을 시시각각 넘나드는 여럿이면서 하나인 세계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를 이루는 것들도 서로 다른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몸의 각 부분들과 지난 기억들, 하루 하루의 일상들은 각각 나눠져 있으면서도 이어져서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만든다. 세계가 여럿이면서 하나일 수 있는 이유는 여럿을 서로 이어주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몸의 여러 부분들을 한번에 모두 이어서 하나의 전체로 만들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하나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이 넓은 우주를 한 번에 모두 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저기 먼 우주 어느 별에서 출발한 빛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내 눈에 들어오듯이, 작은 이어짐들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작고 여럿인 직접적인 이어짐들이 계속되면서 모두가 간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되어서 하나로서의 세계가 된다. 하나로서의 바위, 하나로서의 사람, 하나로서의 세계는 그 전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항상 직진하는 빛과 달리, 냄새는 확산되고 스며들고 넘치고 소용돌이친다. "핀이 새로운 공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것을 관찰할 때마다, 나는 나의 시각이 제공하는 명확한 경계를 무시하려고 노력해요. 대신 뚜렷한 경계가 없는 '희미하게 빛나는 환경'을 상상하곤 해요"라고 호로비츠는 말한다. "초점 영역이 존재하지만, 뭐랄까 모든 영역이 서로 스며든다고 할 수 있죠." 냄새는 어둠을 통과하고, 모퉁이를 돌고, 그 밖의 악조건에서도 이동한다. … 냄새는 원천보다 먼저 도착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할 수도 있다.**
* 문정희, 시집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중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서 발췌, 민음사, 2004.
** 에드 용, 양병찬 옮김, <이토록 굉장한 세계> 41~42쪽, 어크로스, 2023. 핀은 호로비츠의 반려견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