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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24. 2020

배아 이식 후 멈춰버린 시간 2.

배아 이식을 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내 자궁 안에서 착상이 잘 되라고 착상에 좋다는 음식을 골라서 먹고 잘 쉬는 방법밖에는.


난임 병원 선생님들은 술, 담배, 마약만 안 하면 된다며 음식 가리느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좋은 음식을 끼니마다 잘 챙겨 먹으라고 다. 하지만 힘들고 비싼 시술 과정을 거친 내가 진짜로 그 말을 듣고 음식을 대충 먹을 사람인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착상에 좋다는 음식들의 리스트가 올라와 있었다. 소고기, 전복, 장어, 추어탕, 두부, 두유, 포도 등등 고비용 고단백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착상을 방해하는 음식은 커피, 밀가루, 돼지고기, 인스턴트 등 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커피와 밀가루와 맥주와 와인을 끊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나였는데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나는 이 최애 템들을 싹 끊었다. (아, 거짓말이다. 크림빵은  번 먹었다. 이 마저 안 먹으면 난 너무 우울하다. 스트레스가 더 나쁘다니까..)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참 희한하게도 술맛이 뚝 떨어졌다.(나와 남편은 둘이서 양조장 투어를 다닐 정도로 애주가다) 때문에 이삼일에 한번 꼴로 맥주나 와인을 즐기던 내가 술을 멀리한지는 좀 됐었고 커피는 과배란을 시작하면서 머신을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굳이 임신에 나쁘다는데 그걸 계속 먹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난 병원에서 계속 말하는 대로 노산이 아닌가. 과배란을 진행하는 중에 생일이 지나서 그나마도 한살이 더 올라갔다. 이런 내가 남들은 그냥 다 먹고도 성공했다더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희망 회로를 돌리며 아무 노력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난 추어탕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포장된 추어탕을 왕창 구매해서 매일 밥을 말아먹었다. 남편은 나보고 입에서 미꾸라지가 나오겠다면서 놀렸다. 그리고는 추어탕단백질이 부족해서 안된다며 매일 소고기를 사다 날랐고 호주로 고기 굽기 유학을 다녀온 실력을 뽐내며 저녁마다 미디엄 레어로 소고기를 구워줬다.


그렇게 우리 집 가계부는 폭발하기 직전이 되었다. 병원비도 엄청나게 써댔는데 매일 저녁으로 소고기나 전복을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리 그게 한우가 아니고 수입산이라 한들 돼지보다 비싸다. 밀가루 음식보다는 훨씬 더 비싸다. 게다가 난 지금 코로나로 인해 7월부터 실직 상태였다. 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가계부를 보니 병원비와 식비가 눈에 띄게 가파르게 폭증하고 있었다. 남편은 걱정 말라했지만 걱정이 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그런 사사로운 건 신경 쓰지 말고 스트레스 안 받게 내 몸이나 잘 관리하라고 했다.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니 기운이 났는지 과배란 땐 우울해서 꼼짝도 못 하던 때와 달리 그냥 딩크로 편하게 살 것이지 네가 애 낳자고 해서 이게 다 뭐냐며 성질을 부렸다. 소고기 느끼해서 그만 먹고 싶다고, 난 고기 먹기 싫다고 남편을 볶았다. 참 웃기는 상황이다. 애를 낳자고 말이야 남편이 먼저 꺼냈다 한들 내가 동의해놓고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너 때문이라고, 네가 아이낳자고 해서 이렇게 내가 힘든 거라고  남편을 볶아챘으니. 난 아무래도 악처인 게 분명하다.


남편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지겠다면서 매번 나에게 미안해했다.




배아 이식을 하고 나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임신테스트기다. 임신테스트기를 건드리는 순간 이제 테스트기의 노예가 된다. 한 줄이 나오면 한 줄이 나오는 대로, 두 줄이 나오면 두 줄이 나오는 대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거다. 두 줄이 나오면 그때부터 진하기를 비교해야 해서 매일 임테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착상이 된 후 HCG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점부터 임테기에서 두줄을 볼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테스트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시험관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얼리 임테기를 많이들 구매한다. 보통 얼리 임테기는 10~15 수치의 적은 호르몬에도 반응을 하고, 일반 임테기는 25 이상의 수치에 반응을 한다. 때문에 미리 두 줄을 보고 싶으면 얼리 임테기를 구매해서 보는 것이 좋다.


나는 임테기 트라우마가 있다. 1년 넘게 임신 시도를 하면서 한 줄을 하도 많이 봐서 임테기만 보면 손이 덜덜 떨렸다. 초초초 매직아이로라도 단 한 번도 두 줄을 본 적이 없었다. 얼리도 써봤고 일반 임테기도 써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두 줄이 나온 적이 없었다. 비싼 것, 싼 것 다 사다 써봤는데 모조리 다 나에게 한 줄을 선사해줬다.


간혹 불량 임테기를 사는 경우 가끔 시약선이 나와서 두 줄인 줄 알고 오해한다는데 난 그 불량 임테기 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임테기는 늘 깔끔한 한 줄이었다. 나도 두 줄이 나온 임테기를 들고 남편한테 뛰어가서 '여보 이것 봐 임신이야!'라고 말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여태껏 일어나지 않았다.


카페에 보니 5일 배양이 착상에 성공하면 5일 차부터 임테기에 흐릿하게 두 줄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다들 그냥 피검사하는 날 아침에 테스트기를 해보고 가라고, 그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1차 피검사날 아침에 임테기를 했는데 한 줄이 나와서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피검사 날짜에 임박해서 임테기를 했더니 한 줄이라며 질정과 주사를 끊어야 되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날짜가 다 되었는데도 또 어김없이 한 줄짜리 임테기를 보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 것만 같았다. 난 임신이 안 되는 몸일까.


이식 5일 차가 지나자 시험관 시술 전에 잔뜩 사놓은 원포 테스트기 박스를 바라보면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저걸 뜯을 것인가 좀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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