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 이식 후 멈춘 듯한 시간아 제발 빨리빨리 흘러가라를 외치며 이식 5일째, 6일째, 7일째를 버텨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임테기를 해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며 가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든 흘려보내려 발버둥 중이던 때였다.
역시나 소론도 부작용에 시달리며 간신히 얕은 잠 속을 헤매고 있던 중 온몸이 가려워 미칠 것 같아서 벅벅 긁다가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려운 건 가려운 거고 이 따끔거림은 대체 뭐지?
비봉사몽간에 일어나 불을 켜고 보니 팔, 다리, 손, 발가락 여기저기 모기에게 신나게 물어뜯기는 중이었다. 대충 물린 데만 세어봐도 열 군데가 넘었다. 결혼 후 나와 함께 있으면 절대 모기에 물리지 않는 남편은 인간 모기 밥이 옆에 있어준 덕분에 모기 따위가 무엇이냐며 세상 편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둘 다 똑같은 B형인데 왜 모기는 나만 무는 지 대체 알 수가 없다. (남편은 내 피가 드러워서라고 했다. 참나)
가뜩이나 불면증에 시달린지도 좀 된 터에 잠을 설쳤더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남편을 한번 걷어차고 거실로 나와서 온 몸에 버물리를 퍼 발랐다. 안방에는 에프킬라를 잔뜩 뿌렸다. 남편은 모기약으로 사람 잡는다고 신경질을 내며 이불을 덮어썼다.
가을 모기가 독하다더니 진짠갑네. 아니 그리고 문 다 닫혀있는데 대체 어디서 들어온 거람.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 오늘도 제대로 자긴 글렀구나.
가만, 오늘 이식 며칠 째지? 8일째인가? 그럼 혹시라도 지금 임테기 하면 나오지 않을까?
모기 때문에 성질이 난 나는 그래 뭐 한 줄 나오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하나 남은 동결 진행하는 거야! 새벽 4시니깐 아침 첫 소변으로 봐도 되겠지! 라며 임테기를 꺼냈다.
12시에 누워서는 계속 잠들지 못하고 두세 시까지 뒤채다가 깜빡 잠들었다가 4시에 일어난 거면 그건 아침 첫 소변이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이 갑작스럽게 임테기를 해봐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나는 임테기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대조선만 진하게 나왔다. 아. 역시 또 한 줄인가 보다. 시험관도 실패인가 보네. 난 임테기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건가보다... 난 왜 임신이 안 되는 거지?? 혹시 착상이 늦었나? 내일 해보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울적해하며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침대로 가기 전에 임테기를 버리려는 찰나 희미하게 보이는 왼쪽 테스트 선.
헐?
지금 희미하게 선 뜬 거 맞아??
잘 안 보입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아주 희미하게 두줄이었다.
이거 얼리 테스터기도 아니고 그냥 일반 테스터인데! 일반은 희미하게라도 두줄이면 임신 이랬는데!!!!
새벽 4시에 소리는 못 지르고 혼자서 임테기를 들고 방방방방 뛰었다. 모기에게 뜯겨서 가려운 건 이미 잊었다. 선이 너무 희미해서 고물 폰인 내 노트 8로 찍으니깐 선이 아예 안보였다. 남편의 아이폰 프로를 들고 나와서 찍어보니 사진에 희미하게 선이 보였다.
이거 빨리 남편한테 말해줄까? 아 안돼, 쟤 자다가 깨우면 싫어하는데. 아까 내가 걷어차서 짜증 내던데. 아침에 남편 일어나면 말해줄까? 를 잠깐 고민하고 안방에 뛰어들어가서 외쳤다.
"여보!! 빨리 일어나 봐!!!! 두 줄이야!!!!"
안 그래도 아까 걷어차인 데다 모기약을 뒤집어쓴 것에 심사가 뒤틀린 남편은 왜 출근하는 사람 잠도 못 자게 하냐면서 오만 짜증을 다 내다가 내가 귀신처럼 임테기를 들고 서있자 부스스 일어나서 임테기를 봤다.
"안 보이는데?"
이게 장님이가. 이게 왜 안 보여?
희미해서 안 보인단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라고했다.
너무 희미하다며 이게 두 줄 맞냔다. 응. 맞거던?
남편은 알았다고, 진정하고 일단 자라고 했다.
진정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갑자기 아까 방에 마구 뿌려댄 에프킬라와 온몸에 퍼바른 버물리가 떠올랐다. 나 이제 임산부일지도 모르는데 임산부는 모기약 뿌리고 발라도 되나? 안될 것 같은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뿌리는 모기약은 쓰면 안 된단다. 바르는 모기약도 가급적 바르면 안 되고 가려우면 숟가락을 얼렸다가 그 부위에 대란다. 참나.. 냉동실에 들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
쿠팡을 뒤적거려서 침대에 설치하는 대형 모기장을 주문해 놓고 다시 얕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다시 임테기를 꺼냈다. 아. 이렇게 노예가 된다는 거구나.
4시보다는 조금 더 진해진 것처럼 보였다.
와. 진짜 두줄이네.
두 줄을 보면 되게 감격스럽거나 기뻐서 눈물이 나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얼떨떨했다. 이게 두 줄이면 나 임신인 건가? 나 착상에 성공한 거야? 진짜로?
남편은 나보고 제발 침착하라고, 선이 더 진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얘는 맨날 안 궁금한 척, 안 찾아보는 척, 괜찮은 척하면서 나 몰래 인터넷을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내 앞에선 태연한 척을 한다. 너도 지금 생각 복잡한 거 딱 보이거든?
임테기는 이제 점점 더 진해져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1차 피검 날에 가서 피검 수치가 안정적으로 나와줘야 한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다. 1차 피검을 통과하면 이후 2차 피검을 통과해야 하고 그 후엔 아기집을 제대로 봐야 하며 아기집을 보고 나면 2주 뒤에 아기 심장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두 줄이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내 주위에는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도 유산한 지인이 두 명이나 있었다. 난임 카페에는 피검을 통과하고도 유산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기집을 보고 난 뒤에 유산되면 수술을 해야 되니 차라리 화유(화학적 유산)가 낫다고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