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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Sep 26. 2020

시험관 성공 체크의 첫 번째 관문, 피검사.

5일 배양 이식 8일 차에 임테기 희미한 두 줄을 봤다.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1차 피검사 날까지는 이제 이틀이 남았다.


9일째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임테기를 다시 꺼냈다.

생각만큼 진해지지가 않았다.

남편에게 이거 어떡하냐고, 많이 진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틀에 한 번씩 보면서 진하기를 비교해 봐야 한단다.

이거 봐. 너 종일 인터넷 검색하지??  


슬쩍 본 남편의 포털 검색기록에는 임신 초기 증상, 시험관 피검사, 임테기 등등의 검색어가 있었다 ㅋㅋ

그래도 맨 처음 본 임테기보다는 조금 더 진해진 것처럼 보였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나가고 싶어서 외식을 하고 왔는데 그거 좀 걸었다고 몸이 피곤했는지 갈색 피가 속옷에 묻어 나왔다. 피를 보자 머리가 멍해졌다. 여보, 나 피났어.


맞고 있는 크녹산이라는 그 멍 주사는 지혈을 막는 역할을 한다. 혈류를 잘 돌게 해서 착상을 돕는 주사인데 (혈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처방받는 주사이고 혈전 문제가 없어도 착상 잘 되라고 처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게 피가 잘 안 멎는 부작용이 있다. 때문에 피가 많이 나면 크녹산을 맞는 경우 피가 잘 안 멎을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 바로 가야 한다.


남편은 태연하게 갈색 혈이 양이 많지 않으면 착상혈일 수도 있다고 했다. 가끔 보면 얘는 진짜 멘탈이 좋은 것 같다. 다행히 출혈은 많지 않았고 금방 멎었다. 정말 착상혈이었을까? 갈색 피는 이식 때 수정란이 자궁벽을 파고들면서 피가 좀 났다가 그게 밖으로 나올 때 갈색의 형태로 조금 나온다고.


그리고 대망의 1차 피검사 날이 왔다.


아침에 테스트기를 해보니 어제보다 좀 더 진해졌고 8일 차보다는 확실히 진해졌다.


병원에 가니 선생님이 테스트기를 해봤냐고 하셨고 두 줄이 나왔다고 하니 축하한다고 하셨다. 아. 임테기 두줄이면 일단 임신으로 보는구나. 신선 1차에 성공하면 로또라던데 그렇게 사댄 로또는 당첨이 잘 안되더니 여기서 이렇게 되네.


시험관 시술은 자연임신과 다르기 때문에 배양 날짜에 따라 정해진 이벤트가 딱딱 맞아줘야 한다고 했다. 남들보단 희미하지만 일단 두 줄도 잘 나왔고, 날짜 맞춰서 착상혈도 보였고 지금까지 예후로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마치 생리가 시작될 것처럼 배가 뭉근하게 아팠다. 난임 카페에는 두 줄을 보고도 생리 예정일에 생리가 시작된 사람들도 있었다. 선생님께 이러다 생리가 시작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질정을 잘 유지하면서 2차 피검사까지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https://blog.naver.com/njellnasol/222235079751

집에 돌아와서 병원의 피검사 결과 전화를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넘어서 걸려온 전화는 내 1차 피검 수치가 92.9라고 임신 축하드린다고 했다.


역시나 두 줄을 봤을 때처럼 기분이 얼떨떨했다.


한편으론 남들은 1차에 높은 수치로 패스하던데 난 또 턱걸이로 통과했네 싶었다. 1차 피검은 수치가 100을 넘으면 안정권으로 보고 2차엔 1차보다 1.67배 수치가 올라야 한다고 했다.


난 역시 간당간당하게 걸려서 넘어가는구나. 노산이라 그런가 보다. 뭐 어쨌든 되기만 하면 되는 거지 뭐.


남편에게 수치를 알려줬더니 알았다면서 혹시 쌍둥이 아니냐고 했다. 쌍둥이는 보통 1차부터 300 이상 수치가 크게 나온다던데. 그리고 아기집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너 쌍둥이 원한 거였니...?




지금 생각해보면 임신 극초기 증상 생리 전 증후군이랑 비슷한데 뭔가  양상의 통증이었다. 20년 넘게 생리를 해오면서 내 겪은 증상이 한두 번이었겠는가. 임신이 되지 않던 그 기간 동안 증상 놀이를 했을 때는 생리 전 증상은 그냥 딱 생리 전 증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종류의 통증이었던 것이다. 이걸 몰랐으니 그동안 생리 전 증후군이 찾아오면 임신일지도 모른다며 김칫국을 퍼마셨지.


착상이 이루어지고 나면 아기는 자궁에 자기가 있을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궁이 점차 커지는데 이때 발생하는 통증이 생리 전 증후군과 비슷하다는 그 통증이다. 난임 카페들에서는 그걸 와이존이 쿡쿡 쑤신다고 표현하는데 나는 와이존이 쑤신 게 아니고 배 묵직하게 뻐근했다. 그리고 굉장히 어지러웠다. 빈혈도 없는데 앉았다가 일어나거나 누웠다가 일어나면 머리가 핑핑 돌고 눈 앞이 아찔했다. 남편은 또 인터넷 지식으로 자궁에 피가 몰려서 어지러운 것이라고 했다.


배가 뻐근해져 오면 찰싹이가 집을 잘 짓고 있구나 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었다. 미미한 배 통증은 매일 이어졌고 통증이 갑자기 없어지면 얘가 집을 안 짓나 싶어서 마음이 또 불안해졌다. 내 자궁벽에 찰싹 잘 붙어있으라고 계속 되뇌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아기를 찰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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