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피검사 후 이틀 뒤 진행된 2차 피검사는 260점대로 정상적으로 수치가 잘 올라서 일주일 뒤 초음파 예약이 잡혔다. 초음파상으로 아기집이 보여야 다음 단계 통과인 것. 초음파 검사날을 기다리는 일주일은 또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배는 뭉근한 통증이 있었고 불면증은 여전했으며 식욕은 여전히 없었고 테스트기는 점점 진해져서 대조선과 진하기가 똑같아졌다.
영겁의 시간 같은 기다림이 지나고 드디어 초음파를 보는 날. 남편과 대판 싸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데 말 그대로 뚜껑이 열릴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울면서 병원을 찾은 아침. 초음파실 화면에는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다. 난임 카페나 인터넷에 아기집을 봤다면서 초음파 사진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 사진들에는 딱 봐도 동그란 검정 모양이 선명하게 있었는데 내 초음파 화면엔 그게 보이지 않았다.
초음파실에서는 진료실에 가서 결과를 들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며 피검사를 다시 하고 가라고 했다. 월요일에 진료를 다시 보겠지만 피검사 수치를 봐서 내일 다시 오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걱정시키면 안 되지만 혹시 잘못되면 그 이유도 추적해야 한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아기집이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저 테스트기의 두 줄은 뭐지 대체.
자연 임신이라면 착상이 늦어서 아기집이 늦게 보일 수 있지만 시험관은 날짜에 맞게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보여야 하는 아기집이 안 보인다는 거다.
피를 뽑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울다가 병원 전화를 받았다. 피검사 수치는 3천이 넘었고 자궁 외 임신이 의심된다고 했다. 내일 당장 병원에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자궁 외 임신이라니?
1~2%의 확률로 벌어진다는 그 자궁 외 임신일 수 있다니.
시험관을 하면 자궁 외 임신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길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시술을 안 할 순 없는 것 아니냐며. 그리고 최초의 시험관 시술도 자궁 외 임신으로 진행됐었다고.
그런데 그게 내 케이스여선 안되는 건데.
한참 울다가 인터넷을 뒤졌다. 대부분은 피검사 수치가 기형적으로 오르거나 출혈이 보이면서 자궁 외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난 피도 나지 않았고 피검사 수치는 정상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나 같은 경우도 간혹 자궁 외 판정을 받았다는 사례가 있었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남편과는 계속 냉전 상태다.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남편에게 피검사 수치와 자궁 외 소견을 전달했다.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가뜩이나 섭섭하고 속상한데 서운한 마음이 더 커졌다.
시험관을 오랜 기간 했던 친구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누구보다 내 시술 성공을 기원하는 친구의 입에선 "착상이 늦었을 거야"라는 위로가 먼저 나왔다. 자기도 일주일 늦게 아기집을 봤다며. 출혈도 없고 피검 수치가 정상이니 걱정 말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먼저 이 일을 겪은 친구가 괜찮을 거라고 하니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 완전히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병원에 갔다. 토요일에는 정말이지 난임 병원에 오기 싫다. 가뜩이나 많은 사람이 토요일엔 진짜 너무너무 많다. 초음파 대기실엔 50명 가까운 대기자가 있었고 대기실 소파는 만석이라 바깥 의자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기집이 안 보이면 진짜 큰일이었다. 빨리 초음파실에 가서 확인하고 싶은데 대기는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이 가고, 한 시간 반도 넘게 기다린 뒤에야 초음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병원의 초음파실 선생님은 원래 아무 말씀도 안 해주신다. 하지만 난 절박했다. "선생님, 저 오늘은 아기집 꼭 찾아야 돼요 ㅠ" 선생님은 3차 피검사 결과를 물으셨고 3천이 넘었다 하니 최선을 다해서 찾아보자고 하셨다. 못 찾으면 큰일이라고. 하지만 질식 초음파로는 여전히 아기집이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근종이 자라서 더 안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저 용종 제거 수술 이 병원에서 두 달 전에 다 했는데요?
용종이 아니라 근종이 커졌단다.
하. 한 달 전에는 없던 갑자기 근종이 어디서 자랐다는 건가. 분명 용종 수술 후 깨끗해진 내막을 내 눈으로 확인했었는데. 환장할 노릇이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나팔관 근처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기집이 안보였다. 근종에 가려서 아기집이 안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며 결국 배 초음파를 보자고 했고(배 초음파는 12주가 지나야 보인다던데) 정말 배가 터질 만큼 눌러서 아주 작은, 아기집으로 추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점을 찾았다.
그렇게 초음파실에서 나와 진료실에서 기다리는데 또 내 앞엔 14명의 대기가 있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들어간 진료실에서는 그 점이 아기집일 거라는 말은커녕 일요일에 배가 아프거나 출혈이 보이면 산부인과가 있는 대형병원 응급실이나 동네에 분만 병원은 응급실을 운영할 테니 거기를 바로 방문하라는 기함할 안내만 하더니 주말 지나고 초음파를 다시 보라고 했다.
내가 이딴 소리를 듣자고 세 시간을 기다린 건가.
화가 났다. 그냥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잠시 기뻤다가 이렇게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 와중에 난 집 근처에 대형병원 응급실이 어디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세브란스와 은평 성모, 강북삼성 정도면 되지 않을까...
물론 병원에서도 명확하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그럴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줄 순 없는 건가? 남편은 큰 병원일수록 늘 최악의 이야기만 한다고, 본인들도 책임질 수 없으니 그럴 거라고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초음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오전 내내 내 연락을 기다렸다고 했다. 병원 대기 때문에 너무 오래 걸려서 이제 집에 왔다고, 아기집처럼 보이는 것이 있긴 있다고, 그런데 근종이 자라서 잘 안 보인다고 했다고 말하니 친구는 자기도 아기집이랑 근종이 같이 컸는데 출산하면서 사라졌다고 했다. 임신하면 호르몬 때문에 자궁근종이 같이 클 수 있다고 했다. 그렇구나... 이 친구 없었으면 난 진짜 좌절하다 땅 파고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늦게 크는 거겠지. 5일 배양 말고 4일 배양이 착상이 된 거라서 조금 늦는 거겠지. 남편은 내가 원래 좀 굼떠서 아기도 늦는가 보다 라고 했다. 임테기도 남들보다 날짜에 비해서 흐렸다. 아기집도 늦게 보이는 걸 거다.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