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직업은 여행쪽이 아니었습니다. 오랜기간 다른 분야에 있다가 업종을 바꿔서 여행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거든요. 여행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시작부터 여행업을 하는 경우보다 다른 분야에 있다가 옮겨오는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관광과 출신들이 많긴 하죠.
여행사라고 하면 하나투어, 모두투어, 참좋은여행 같은 여행사들만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여행사 타이틀을 단 업체만 2만 2천여개가 있습니다. 광고하는 여행사 스무개 남짓만 알고 계시다가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수의 여행사가 있다는 것이 참 놀랍죠?
그리고 거리에 흔히 보이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한진관광 간판을 달고 있는 대리점들은 다 각자 여행사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집 앞에 있는 하나투어 대리점도 큰 간판은 하나투어인데 오른쪽 구석에 비*관광이라고 붙어있어요. 사업자 등록을 할 때 하나투어 대리점이라고 등록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여행사 이름으로 등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2만개가 넘는 업체들 중에는 '랜드사'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랜드사는 네이버에 나온 정의에 의하면 '현지 교민 여행사'를 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랜드사가 국내에(거의 서울) 직영 영업소를 내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여행업의 시작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했습니다. 사실 일의 재미를 따져보면 한국보다 현지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재밌습니다. 그리고 실제 여행 상품과 제일 가까운 것도 현지고요. 직접 호텔도 수배하고 식당도 잡고 차량도 구하고 관광지도 동선에 맞게 구성하는 것은 모두 현지 랜드사에서 진행합니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것은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겠죠?
저는 현지 랜드사, 국내 랜드사, 일반 여행사에서 다 일을 했었는데 각자의 역할이 다 다릅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 랜드사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간단히 정의하자면 랜드사는 도매상, 여행사는 소매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여행 상품의 구조를 간단히 설명해 드릴게요. 대부분의 여행 상품은 항공 + 현지상품으로 구성됩니다.
제일 흔한 서유럽 패키지 상품을 예로 들겠습니다.
프스이(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9일 상품을 판매하려고 할 때 상품에 들어가 있는 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항공권 : ICN(인천)-CDG(파리)/FCO(로마)-ICN(인천), KE(대한항공), OZ(아시아나항공). 간혹 경유편이거나 외항사를 타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롬-롬, 파-파 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2. 현지 상품 - 호텔, 식당, 차량, 운전기사, 기차, 관광지 입장료, 현지 가이드 등
3. 인솔자 - 포함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유럽상품은 인솔자 포함입니다.
여기에서 2번, 현지상품을 만들어서 여행사에 판매하는 도매상이 바로 랜드사에요. 국내 랜드사는 현지 랜드사에서 한국에 내놓은 연락사무소 입니다. 이탈리아 현지 랜드사가 국내 여행사랑 시차같은 것들로 인해 필요할 때 컨택하기가 어려우니 영업소를 한국에 내놓고 그 국내 랜드사가 한국 여행사랑 긴밀하게 컨택을 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고 관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랜드사는 B to B / 여행사는 B to C 입니다. 그리고 여행상품은 큰 돈이 오가는 부분이다 보니 자금이나 계약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국내에 사업자를 둔 국내 랜드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영 랜드사들은 현지사무실에서 운영비를 받아서 운영하기 때문에 현지 상품을 잘 팔아야 운영비도 늘고 영업소도 확장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랜드사들 중에 진짜로 현지랑 연결된 랜드사들도 있고 직영 랜드사한테 물건을 받아서 마진을 붙여서 여행사에 파는 랜드의 랜드사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사에서 국내 랜드사를 찾을 때는 직접 연결된 현지 회사가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지에 있는 회사가 출자해서 한국에 사무소를 차리거나 반대로 한국에 있는 여행사들이 랜드사를 추가로 설립하고 현지에 사무실을 내서 운영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사나 랜드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랜드사를 차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 기존에 거래하던 거래처를 데리고 나오기 때문에 현지 랜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출자해서 차린 랜드사가 아니지만 자기의 현지 상품을 팔아주는 국내 랜드사가 더 생기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현지와 랜드는 직영이 우선이고 서로 신뢰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신규 국내 랜드사들이 장사를 엄청 잘하지 않는 이상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편으로는 현지 랜드사가 규모가 작아서 한국에 영업소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존에 영업중인 국내 랜드사랑 제휴하는 형태도 있습니다.
각 나라나 지역별로 대표 랜드사들이 있습니다. 저도 지금 발리 하면 A사, 미 동부 하면 B사, 동유럽 하면 C사, 대양주 하면 D사... 이런식으로 떠오르네요. 랜드사는 여행사만큼 많지 않습니다.
여행사가 영업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현지랑 연락해서 상품을 팔면 더 쌀텐데 굳이 국내 랜드사를 껴서 상품을 납품 받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랜드사들도 한국에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원가가 오면 마진을 붙여서 여행사에 판매하게 됩니다.
때문에 대형 여행사들에서 직접 현지 랜드사를 운영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부터 영업해오던 현지 랜드를 상대로 신규 업체가 현지에서 좋은 견적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패키지사에서 만든 현지사무소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었죠. 그리고 여행사들이 현지까지 직접 핸들링을 하려고 하니 인력이나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었고요. 그 고생을 해서 남긴 마진이 기존 랜드사한테 받아서 일하는 마진과 별 차이 없거나 손해이니 여행사 입장에서는 힘만 들었던 겁니다.
어차피 몇십년 꾸준히 거래해온 랜드사들이 있는데 굳이 여행사가 나서서 랜드사 역할까지는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현지 회사들끼리 경쟁해서 가격도 낮춰서 상품을 갖다주는데 굳이 여행사가 나서서 현지까지 건드릴 필요도 없고요. 여행사 입장에서는 손 많이 가는 중간 과정을 랜드사에서 다 해주는데 굳이 낄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형 패키지 여행사는 광고를 해서 상품을 파는 일에만 집중을 하고, 여행 상품 개발과 핸들링은 랜드사에서 합니다. 실제로 랜드사 직원은 여행사 가서 일할 수 있는데 패키지여행사 직원은 랜드사 오면 일 못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행산업이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플랫폼 여행 산업이 활성화 되고 FIT(Free Independent Tour)여행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많은 개별 여행객들은 여행사를 이용하기 보다는 자유여행을 많이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스카이스캐너나 호텔스닷컴 같은 OTA(Online Travel Agency)들이 활성화되면서 개별여행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거든요.
하지만 예전부터 꾸준히 패키지여행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많은 분들이 편리한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며 한동안은 홈쇼핑이 나서서 패키지 여행 상품을 어마어마하게 판매했습니다. 때문에 현지 랜드사 - 국내 랜드사 - 여행사의 납품구조는 여전히 긴밀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OTA의 보급과 FIT 여행의 활성화로 패키지 시장의 축소가 일어나자 현지 직영 랜드사 또는 랜드에서 직접 운영하는 현지사무소의 형태가 아닌 랜드사들 - 위에 이야기 한 것 처럼 직원이 나와서 새로 차린 랜드사들의 경우 - 은 직접 여행 상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걸 직판 또는 홀세일러라고 부르는데요. 패키지 회사들 말고 랜드사가 직접 모객을 해서 상품을 출발시키는 경우입니다. 부산 지역은 대부분 홀세일러 구조입니다. 부산여행사라고 해서 보면 상품 만들고 상품 팔고 다른 여행사에 견적주고 이것 저것 다합니다.
참좋은여행이나 노랑풍선이 직판 여행을 한다고 하는데 이건 대리점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였다는 이야기지 현지랑 직접 상품컨택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여행사들도 다 국내 랜드사에서 상품을 납품 받습니다.
패키지 여행사에 납품하는 국내 랜드사의 경우는 홀세일을 하지 않습니다. 했다가는 바로 계약정지 당합니다. 팩사 입장에서는 같은 상품을 랜드사에서 직접 손님에게 파는 것을 그냥 둘 리 없죠. 하지만 팩사에 납품하지 않고 그냥 일반 여행사에 현지 상품을 납품하는 랜드사의 경우에는 모객력이 된다면 직판을 안할 이유도 없습니다. 직판은 정말 이익이 많이 남거든요. 하지만 랜드사들의 모객력은 여행사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랜드사들은 그냥 장사 잘하는 여행사들과 잘 지내는 편이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랜드사들이 직판의 꿈을 꾸다가 접는 경우 많습니다. 광고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코로나 때문에 많은 현지 랜드사 사장님들이 가족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계십니다. 현지에서 버티기 어려워서 귀국하신 경우들도 있고 힘들지만 끝까지 현지에서 버티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현지 업체든 한국 업체든 지금 이 시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듯 합니다. 코로나가 어서 사라져서 다시 영업이 재개될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