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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Nov 17. 2021

브런치가 나를 부를 때

학생들에게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목이 터져라 얘기를 하고 있으면서(물론 학생들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있지만), 정작 나는 글쓰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가 결국 브런치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하늘색 알림 표시에 새소식을 눌렀더니 이렇게 브런치의 애절한 글 독촉이 와있었다.

내가 두 달 가까이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고? (지금은 11월이니 저 알람을 받고도 또! 30일이 지났나보다)


작년엔 뭐 그리 하소연할 것이 많았는지 꽤 자주 글을 썼다. 아니 거의 글을 토해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에게 닥친 상황이 힘들었고, 몸도 마음도 정신도 피폐하기 짝이 없는, 마치 모든 삼재가 나만 공격하는 것 같은 시절을 견디고 있는 와중에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서 하루종일 브런치 어플에 매달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이제 좀 숨 좀 쉴만하다 싶어지니 글쓰기에 소홀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줍짢은 핑계를 대보자면 수업 준비를 하느라고 꿈에서도 피피티를 만들고 있었고 내 수업이 재미가 없다면서 애들이 우르르 뒷문으로 나가버리는 악몽 속을 헤맸으며, 난생 처음 원격 수업을 해야 해서 줌에서 생쇼를 하면서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못 들었던 좋은 연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 퇴근하고 와서도 줌에 매달려 있었어야 했고 그렇게 고생한 주중을 보상하려고 주말에는 미친(?) 듯이 놀았다. 그 생활 속에 나를 구해주던 글쓰기가 없었을 뿐.


죽네사네 할 때는 그렇게 매달려 쓰던 것이 이렇게 한 순간에 소원해질 줄이야. 난 역시 갈대같은 인간이었다.


브런치의 뼈 때리는 알림을 받고도 '뭘 쓰지?' 하면서 하염없이 노닥노닥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남편과 함께 읽었는데 남편 왈 '왜 너는 이런 글은 못쓰냐'는 것. 순간 자동반사적으로 "내가 작정하고 쓰면 이거보다 훨씬 더 잘쓰거든???" 이라고 눈을 부라렸지만 남편의 한마디에 KO 당했다.


"네 글은 재미없어. 잘은 쓰는 것 같은데 임팩트가 없달까."


팩폭에 아팠지만 사실 글을 작정하고 써본 적이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저렇게 책으로 나올 만큼 잘 쓸 수 있을런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브런치가 뼈 때린 멘트 중에 여러 작가들이 브런치를 통해 책을 내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나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냥 감정 가는대로 막 쓴 글을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해주겠는가.


학생들에게는 늘 글의 맥락, 주제의 통일성 같은 것들을 주입시켜놓고 나야말로 손가락 움직이는대로 써대는 중이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나 글 좀 써봤다'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알 것이다. 발로 쓴 뻘글같아 보이는 글들도 그렇게 쓰기 까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이건 써 본 사람들만 안다. '서울 자가에.. ' 이 책 역시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다 인기가 있어져서 페이퍼백으로 나온 것이라 굉장히 쉽게 쓰여진 글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쓰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쓰는 것도 어려운데 쉽고 재미도 있어야 하고 하물며 인기까지 있어야 하니, 그건 더욱 더 어렵다.


그리고 글을 쓰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시간이 든다. 쓰는데도 시간이 엄청 걸리는데 퇴고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든다. 그러니 글쓰기는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과 열정을 들여서 생산해 낸 결과물은 그닥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적당한 자기 만족에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그래서 쓰다 지치면 나름 혼자서 절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꽤 바쁜 통에 머리아픈 글은 읽기도 싫어서 애들이나 보는 줄 알았던 창비 청소년문고류를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이게 너무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플롯이 꼬여있고 어려운 문장이 난무하고 내포한 의미가 너무나도 심오해서 두번 세번 읽어야 하는 문장들과 씨름하다가 이 심플한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니 개비스콘 먹은 것 마냥 머릿속이 시원해졌달까.


한편으로는 이 어린이문고나 청소년문고를 쓰는 사람들은 다 어른들일텐데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썼지?? 하면서  그들의 재능과 능력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책을 읽어놓고도 왜 이런 걸 못쓸까 자기비하도 해보고.


글을 쉽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자판 앞에만 앉으면 나름 진지충이 되어 '이렇게 써볼까? 이런 멘트를 쓰면 좀 있어보일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어떤 날은 자판 위를 날아다니면서 글이 써지는 반면 어떤 날은 문장이 계속 꼬여대서 도대체 어디부터 풀어나가야 될지 막막해지는 날도 있다. 어떤 날은 글이 이리저리로 튀어서 써놓고 보니 도대체가 나도 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차마 밖에 내놓기 부끄러워 서랍에 처박아버린 날도 있었다.


복권도 사야 당첨이 되고 글도 첫 문장을 써야 완성이 되는데 그 시작이 참 어렵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는 것인가 보다.




자판을 두들기면서 뭐라도 쓰고 있는 지금이 오랜만에 참 즐겁다. 우리 애들은 당장 내일로 닥쳐온 수능에 부들부들 하고 있겠지만 갑자기 수능 감독에서 면제된 나는 오랜만의 여유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다른 선생님들이 들으면 배불러터진 소리 한다고 욕을 하겠지만. (수능 감독은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안가고 싶다고들 하니까 ㅎㅎ)


성공한 작가들은 뻘글이라도 계속 쉬지말고 쓰라고 한다. 나도 지치지 말고 뻘글부터라도 계속 써봐야겠다.



이 와중에 브런치로부터 이런 선물이 도착했다!

게으름은 피웠지만 나쁘지 않았다고 셀프칭찬을 해본다. ㅎㅎ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요 해주신 많은 분들 복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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