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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Nov 16. 2021

ISTP와 ENFJ.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부부

얼마 전 학교에서 MBTI 학습법 강의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MBTI 학습법 강의를 위해 강사님을 멀리서 어렵게 모셨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거절하실까봐 걱정했는데 흔쾌히 와주셔서 너무 다행이었다는.


각자의 MBTI 유형을 알면 나에게는 어떤 공부법이 맞는지, 왜 이 과목이 유난히 힘든지(물론 애들은 수학,과학은 다 싫어요 라고 했지만), 어떤 학습전략이 맞는지 알 수 있다 하여 이 강연회를 기획했었다. 참고로 강사님의 분석에 의하면 내 유형은 끈기가 없어서 뻑하면 벼락치기를 하고, 처음부터 괜히 하나하나 꼼꼼히 보다가 뒤까지 진도를 못빼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유형이다.(그래서 내가 서울대를 못간거다!) 학생들 뒤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맞아, 맞아'를 백번쯤 외친 것 같다. 학생들 역시 '어? 나 진짜 그런데?? 야, 저거 진짜 너다' 하면서 열심히 듣고 있었다. 아마 그날 강의를 들은 아이들은 본인이 여태 왜 그런 학습법을 사용해왔는지, 뒤처지는 과목에 대해서 어떻게 전략을 세울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강의 끝나고 가신다는 강사님을 붙잡고 늘어진 애들이 많았으니까. "제 MBTI는 이건데요! 책상앞에 앉기가 싫어요!"



어떻게 사람을 단 1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가 있냐는 논란이 있는 MBTI지만, 우리는 4가지 혈액형 속에도 차곡차곡 구겨 넣은 한국인 아닌가.


MBTI는 사람 성격 유형지표다.


나는 ISTP고, 남편은 ENFJ였다.

우린 알파벳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특히나 여자들은 ISTP가 거의 안나온단다.


남편과 나는 정 반대의 사람이다. 처음에는 둘이 매우 비슷한 줄 알았는데 둘이 같은건 미친짓을 할 때 으쌰으쌰하는 B형의 도른자 유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다 달랐다. 우리 둘의 성격은 극과극 이었으며, 위기 대처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세상을 보는 시선 등등 모든 것이 다 달랐다.


강의 시작 전에 잠시 시간이 나서 강사님께 '저는 ISTP고 남편은 ENFJ인데 이런 경우는 어떤가요?' 라고 여쭤봤는데 순간 엄청 당혹스러워 하는 강사님의 표정을 봤다.


본인이 세번째 책으로 MBTI 궁합편을 냈다 하셨는데 나랑 남편의 궁합은 최악이라고.........ㅋㅋ

일전에 이 궁합차트를 봤을 때도 우린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였다.


유형별 동물을 봐도 ISTP는 고양이, ENFJ는 개다. 안 맞다.


저 두 MBTI는 왜 상극이냐고 여쭤봤더니 이 유형이 남녀가 바뀌면 괜찮은 궁합인데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그 반대라 너어어무 안맞는단다.


ISTP는 시니컬하고 무덤덤한편인데 ENFJ는 다정다감하고 이벤트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남녀가 바뀌어있으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문제가 된다고 하셨다.


이 해석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신혼 때 남편이 꽃을 사들고 왔는데 내가 이거 마르면 버릴 때 쓰레기 많이 나온다고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 기억났다. 앞으로는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망언까지는 안퍼부었던 것 같다. 아닌가, 했나??


전부터 꽃을 받으면 받을 땐 잠깐 기분이 좋은데 이후가 처치곤란이라(쓰레기 대량생산) 별로 안즐거워 했었는데(먹지도 못하는거 차라리 돈이나 화분으로 주면 좋겠다 생각해옴) 이건 ISTP. 반면 와이프가 감동하겠지~~ 하면서 퇴근길 꽃집에서 꽃을 골라서 쨘! 하고 주는 건 ENFJ.


로보트같은 와이프와 로맨틱한 남편이 만났으니 총체적 난국...


생각해보니 남편은 내 반응이 뭐 이따위냐면서 어느순간 이벤트의 의지를 상실했던 것 같다. 나는 신혼이라 기분내려고 이벤트를 해준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고 내가 반응이 없자 실망해서 '이벤트 해줘봐야 뭐하나...' 하면서 접은것이었다. 내딴엔 좋은 티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맘에 안드나보네...' 소리도 들었던 적이 있었고. 좋다고 했는데 영혼이 없다며 타박받기 일쑤였다.


결혼한지 얼마나 됐냐는 강사님 말에 '8년차인데요' 했더니 '열심히 노력하면서 사셨겠네요' 라고 하셨다. 내 귀에는 '드럽게 안맞는 애들끼리 맞춰 사느라 꽤나 고생했겠군'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간이검사 말고 제대로 꼭 검사 다시 해보라고 매우 진지하게 권하셨다. 재검을 하면 다른유형이 나올거라며! 그분은 진심으로 우리의 MBTI가 잘못 측정된 것이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줬더니 "원래 너랑 나랑 안맞잖아" 란다.


일례로 남편과 내가 각자 차사고가 났을 때 난 내가 사회적 학습이 된 인간이라 사회적으로 나이스하게 보이기 위해 "괜찮아?" 를 먼저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단다. 남편의 카톡내용을 복붙하자면,


사고 났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와이프 왈 : 뭐? 어디서? 왜? 얼마나? 차는? 과실비율은? 여보는 괜찮아? 다친데는 없어?
남편 왈 : 다친데는? 다친 사람은? 사람 안다쳤으면 됐어~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사고 났는데? 보험에다 내가 연락할까?  


이거야말로 명확하게 ISTP와 ENFJ의 성격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 할말이 없어서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 내가 그랬구나... ISTP는 사고나면 '보험은?'이 찐 걱정 멘트라더니 내가 그러고 있었네... 남편은 자기보다 차가 중요하냐면서 방방 뛰었다. 나 남편 걱정한거 맞는데 -_-;;


강사님은 MBTI 알파벳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잘 맞는다고 하셨다.

그럼 단 하나도 안겹치는 우리는요....??




나의 MBTI를 밝히면 사람들은 굉장히 놀란다. "네가 왜 I 야??" 라면서. 다들 당연히 내가 E 일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고 집순이다. 왜 남들이 나를 E 로 보는지 의문스러울 따름.


MBTI는 재미로 보는 것이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나와 다른사람의 유형이 어떤지 알아두면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약간 도움이 된다. 이미 태어난 사람을 어고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안다면 쟤가 태생이 저런 사람이라 저런 태도겠거니... 생각하면 화는 좀 덜 나지 않을까. 그리고 너무 한 유형에 매몰되지 말고 나랑 맞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취하는게 맞는 것 같다.


실제로 대표 유형이 16가지 유형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과 약하게 나타나는 부분들은 세세하게 분석해보면 엄청나게 다들 다르다고 했다. 어느 성향이 49%와 51% 의 비율구성으로 분류가 무색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인터넷의 검사는 축약본이라고 하니, 시간 날 때 제대로 한 번 검사를 다시 받아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그걸 뭐하러 글케 진지하게까지 하냐며 안한다고 드러누웠다. 하, 진짜 안맞는다니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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