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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Dec 07. 2022

교원능력개발평가, 실명제 부터 합시다

얼마 전부터 학생들이 "쌤! 저 쌤한테 5점 드렸습니다!" 라며 자랑스럽게 도서관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일이 잦았다. 아이들이 이런 멘트를 날리는 것은 바로 교원능력개발평가 때문. 학생들에게 이런 멘트가 들려오면 괜스레 소리지르고 혼낼 일이 한 번쯤은 참아지기도 한다. (얘들아 마스크써! 도서관에서 떠들지마!)


연말이 되면 교사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작년에는 학교에 온지 한학기 밖에 되지 않아서 평가대상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빼박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몇몇 선생님들께서 결과는 안보는 것이 병 안만드는 지름길이라 하셨기에 좀 걱정이 되었지만 내심 첫 교원평가라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평가가 끝나갈 무렵 괜히 출근하면 나이스에 들어가서 평가 탭을 들여다보고 아직 평가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팝업을 보면서 대체 결과는 언제나오나... 하며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결과가 떴다.

두근두근.


일반 교사는 해당 교과 학년에서만 평가를 받는데 나는 사서교사라서 전교생의 평가를 받는다.

680명중에 380명이나 응답하다니.

이 녀석들 귀찮지도 않니? :)


자율서술식 문항도 11페이지나 되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써놨대?? 하면서 보니 질문이 두 가지였다.

1.좋은 점 및 바라는 점 / 2.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질문은 학교에서 평가 시작 시점에 셋팅이 가능하다 한다.)


쭉 스크롤을 내리면서 읽어봤는데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기뻤다.

감사하다, 사랑한다, 수업이 재밌었다 등등의 멘트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편지를 써놓은 학생들도 있었고, 우리학교 쌤들 중 성격 원탑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은사님을 꼽으라면 나를 꼽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황송하여라)


물론 내가 1년 내내 도서관에서 사탕과 이벤트 상품을 뿌려대서 마치 슈퍼 또는 문방구 주인을 평가한 것 같은 멘트들도 많았지만....



그런데 악플쓰지 말라고 저렇게 까지 질문 문구를 만들어놨는데도... 악플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한들 악플 한 개는 백만개의 좋은 말들을 무력화시키고도 남는다.

불쑥 튀어나오는 악플에 내 심장이 벌렁벌렁 했으니까.


쓸데 없는 말이 많다니......

학생을 무시하는 발언을 삼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애들에게 쓸데없는 말을 했나?

내가 학생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었나?

곱씹고 곱씹어봐도 잘 모르겠어서 좀 억울했다.


내 수업 때 피곤했는데 안깨워서 고마웠다는 - 이건 나를 돌려깐건가 싶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 평가를 본 다음 수업시간부터는 애들을 쥐잡듯이 잡아서 두들겨 깨웠더라는...


연예인들은 그 수많은 악플을 견디면서 어떻게 살아내는지, 새삼 대단해보였다.

오죽하면 더 이상의 자살을 막겠다고 포털에서 댓글을 막아버렸을까.


나 역시 악플을 달지는 않지만 혹여나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테니 조심하자' 라는 뜬금없는 반성도 해봤다.



동료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거 선생님한테 쓴 거 아닌데 거기 써있는 걸 수도 있다며 위로해주셨다. 학생들이 여러 선생님들을 평가하고 작성하기 때문에 그 선생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이 적혀있기도 하다고. 나 역시 중국어 선생님한테 갈 이야기가 적혀있기도 했다. (악플이라 전달하진 않았다)


그러면서 굳이 왜 그걸 봐서 충격받고 그러냐면서 내년부턴 확인하지 말라 하신다.

꽤 많은 선생님들이 교원평가 열어보지도 않으신다고.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교육활동에 대한 자기성찰을 통해 학교 교육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취지에 동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방법과 결과 등을 보면 이 평가의 신뢰도, 방향성, 효과 등등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성인에 가까운 덩치와 나이라지만 학생들은 학생인지라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들은 교원평가 점수가 매우 짜고, 학생들을 풀어주는 선생님들의 점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예쁘고 잘생기면 점수가 높기도 하다.

학생들을 생각해서 소위 '빡공'시키는 선생님들의 점수는 낮고, 본인들이 싫어하는 과목인 경우(수학, 물리 등등?) 선생님과 관계없이 그저 그 과목이 싫어서 별테하듯이 평점 테러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내 점수가 높은 것은 아마 내가 학생들의 생활지도 담당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


게다가 학부모 평가는 더 문제다. 그 학부모는 교사의 수업을 듣지도, 그 교사를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평가는 직접 부대낀 사람에게 받아야 되는 것이 맞을 터인데.


얼마 전 성희롱이 적힌 교원평가 내용이 공개되면서 과연 이 익명 교원평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교원평가의 익명성을 악용해서 마구잡이로 써댄 글들이 여러 교사들을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 얼평, 몸평, 성희롱, 악의적으로 조롱하는 글들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이나 성희롱 글을 평가프로그램에서 걸러내지도 못하면서 그걸 읽은 교사들의 정신적 충격은 고스란히 그 선생님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러니 많은 선생님들이 평가 결과를 보지 않는다 하시는 것 아닐까? 선생님들이 결과를 보지 않으면 대체 평가 시행 취지는 무엇이란말인가. 그리고 저런 성희롱적 평가를 적은 학생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앞으로도 익명의 뒤에서는 무슨 소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어떻게든 찾아내서 엄벌에 처하는 것이 그 학생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인데 다들 손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서술형은 실명으로 글을 작성하게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아마 나의 서술형 교원평가를 작성한 학생들에게 이름을 밝히고 쓰라고 하면 대부분 동일하게 작성할 것이다. 아무렇게 적어대는 악플러들에게나 실명 작성이 두렵겠지.


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면서 그 학생에 대한 기록을 한다. 물론 생기부에는 그 학생이 아무리 문제아더라도 .그 학생에 대해 나쁜말은 작성하지 않는다. 만일 생기부에 사실을 고스란히 적시해 놓으면 너땜에 우리 애 인생을 망쳤다며 소송당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가끔 심각한 학생들은 있는 그대로 써주고 싶지만 한숨 쉬며 멘트를 고를 때마다 현타가 오기도 한다.


그런데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왜 학생들에게 익명의 가면 뒤에 숨을 권리를 주었을까. 교사도 학생을 평가하니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를 평가할 수 있게 해달라 해서 권한을 줬으면 이 제도가 바르게 시행되고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테두리를 잘 만들었어야 하는데, 지금의 교원평가제도는 아쉬운 면이 많다. 일단, 다른 것 다 차치하고 자유서술식문항 실명제 부터 시행하면 좋겠다. 내년에는 선생님들이 조금은 덜 불편한 마음으로 교원평가를 열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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