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러 돌아와보니 브런치는 브런치스토리로 개편되어 있었다. 내가 글을 안쓰고 노닥거리는 기간 동안 브런치는 플랫폼 최대 딜레마였던 수익형 모델도 탑재하였고, 꾸준히 글을 쓴 작가들에게는 이름 밑에 크리에이터 배지도 달아주기 시작했던 것. (일전에 주던 작가명함카드는 어디에 쓰라고 준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몇개월 노는 동안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수익형 모델에 들어갈 작가 라인업에 들어있지도 않고, 크리에이터 배지도 없다. 한참 브런치에 글을 쓸 때였다면 에세이분야 크리에이터 배지는 달 수 있었을텐데, 괜히 브런치한테 서운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브런치 작가가 전문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공모전 또는 출판 프로젝트 정도만 운영하던 소극적인 브런치였기에 나도 꾸준히 응모는 했으나 매번 떨어졌고, '작가에게 제안하기' 기능을 통해 들어온 메일에는 내 글을 가져다 써도 되냐는 문의가 몇차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내 글에 대한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겠다는 요청은 받아본 적이 없다.
때문에 나는 브런치를 통한 글 작업은 애초부터 돈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글 사용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무료로라도 제공할 것인지 아닐지만을 결정할 수 있었으니까. 원래 매체에 기고를 하면 A4 매당 얼마씩 원고료가 책정이 되어있는데 브런치의 글은 공짜인가?라고 생각할 뿐.
그런데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의 횟수가 점점 누적 되어가고 당선작과 작가들은 유명세를 타고 굳이 그 출판프로젝트를 통하지 않더라도 출판사 편집자들의 눈에 띄어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글밥 생활자'가 되었다. 글은 돈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브런치의 구독자는 약 천이백명 가까이 되고, 글을 올리면 꽤 반응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 글은 수입과 전혀 연결되지 않을까?
브런치는 출판계에서 집중하고 있는 플랫폼이라는데 이쯤되면 내 글은 매력이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단 한 차례의 단순 원고 청탁조차 없었으니. 그러다보니 서서히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다. 혼자 열심히 이것저것 써서 브런치북으로 묶어두고 '뭐라도 되겠지!'라고 했던 막연한 기대감도 어느순간 없어졌다.
브런치에 글을 한 편 쓰는데 드는 시간을 대충 계산해보면 약 2~3시간 정도다. 손 가는 대로 쓰는 평범한 일상 에세이라도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발행 버튼을 눌러볼 수 있다. 물론 누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쓴 글인데 너의 시간이 얼마나 들든 뭔 상관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내 글을 시간내서 읽어주시고 반응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셔서 한동안은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잠시 쉬는 동안 브런치는 리뉴얼을 했고 3개월 이내의 글 발행수 등을 기준으로 하는 크리에이터의 자격에 부합하지 못하게 되어 브런치는 브런치스토리가 되었지만 당근쥬스는 그냥 당근쥬스로 있게 되었다. 전엔 내가 글을 올리면 다음 메인에 자주 올려주더니 이제 브런치와 다음은 나에게 그런 자격을 부여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꾸준히 이어서 쓸, 또는 사람들의 관심이 될 만한 소재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몇 년 간 많은 작가들이 브런치를 떠났다. 그간 브런치에 대한 쓴소리를 남기고 떠난 작가님들을 꽤 많이 봐왔다. 아마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유료 연재 플랫폼으로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그 얘기들을 귀담아 듣고 브런치는 브런치스토리로 리뉴얼을 했다. 하지만 바뀐 시스템을 보며 나는 '다시 이 플랫폼에 있으려면 내가 몇 년 간 들인 시간만큼을 이곳에 또 들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암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사처럼 찔끔찔금이라도 수입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글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써야하는 이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에 앉아서 내가 계속 기대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브런치에서 눈에 띄어 출판으로까지 연결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문성있는 주제로 꾸준히 수준급의 글을 발행해서 브런치북으로 발간하면 출판사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출간 계약을 하자는 연락을 한다. 아니면 출판 프로젝트에 당선이 되어 프로젝트 참가사들과 출간 계약을 맺으면 된다. 그렇게 출간이 되고 작가가 되면 여러 매체들로부터 유료의 원고 청탁이 들어오고, 공공기관 등에서 강연 요청이 오고 그렇게 서서히 원고료와 강연 수입이 주 수입원이 되는 것이다.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간 작가들은 1회 강연시 상당한 강연료를 받는다. (물론 초중고에 오시는 작가님들은 거의 재능기부 해주시는 수준의 강연료에도 와주시지만) 이게 브런치 글밥 생활자들의 루트다. (물론 공식적인 방법인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는 정통 루트도 있다.ㅎㅎ)
여태껏 출판 프로젝트에서 뽑힌 작가들의 글을 봐오면서 내가 쓰는 글 종류는 거의 선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주제가 특별하거나 산뜻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것들이어야 편집자들의 눈에 띄니까. 그러므로 내가 쓰는 신변잡기의 글들은 절대 눈에 띄지도 않고, 열심히 써서 브런치북으로 묶어둔다 한들 편집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난임일기를 한참 쓰고 브런치북으로 묶을 때 난임과 시험관 시술은 요즘 사람들의 화두고 충분한 관심거리가 될 테니 내 글을 에세이집으로 출간하자고 해주지 않을까? 라는 김칫국사발드링킹 같은 기대를 해본 적도 있지만 출판계는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내 글이 출간할 수준이 아니었거나 했는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술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긍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출간 주제로 적합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해봤다.)
한참 유행했고 내 브런치 글들 중 100 공감은 쉽게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시댁과의 갈등 이야기도 출판계에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내가 이혼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계속 생각해왔다. 내 인생 속에서 무엇을 써야할까. 난 정말이지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인데. 그러면서도 또 신변잡기가 한 편씩 떠올라 이게 나의 한계인가 싶어 한동안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멍하니 브런치를 켜놓고 있으면 한창 회사생활을 할 때 지겹게 들었던 sustainability 라는 단어가 계속 떠오른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제조업이라 환경보호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기에 매 해 회사의 목표 키워드 중 상단에 자리하던 단어다. 바로 지속가능성.
꾸준함은 consistant, steady 등 단어들이 따로 있는데 난 그 회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늘 글쓰기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sustainability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지속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 브런치스토리의 크리에이터 배지를 못 받은 것도 지속하지 않아서이다.
나는 문제점도 알고 있고, 해결 방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마땅히 딱 떠오르는 소재들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싶은 것이 정말 큰 문제다.
남편이 늘 지적하는, '그래서 네 세계관은 언제 만들건데?' 에는 대체 언제쯤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