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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ug 10. 2023

폭염 속 정전

폭염으로 온 국토가 지글지글 한참 끓고 있던 한여름의 어느 평일 아침 6시 반.

비몽사몽 꿈나라를 헤매는 중에 밖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놀라 벌떡 튕겨져 일어났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베란다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밑에서 웅성웅성 하고 있는 중. 


습관적으로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까 폭발 소리는 그럼 변압기가 터진 것인가보다. 

얼마 전 남편 회사 앞에서도 변압기가 터져서 사무실이 암흑이 되어 조기퇴근 한 일이 있었기에. 


무슨 상황인지 밖에 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내려왔는데 지하 전기실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119에 신고하고 난리다. 어... 지하 주차장에 차 어떡하지??? 난 차와 내 목숨을 바꿀만큼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지하에 내려가진 않았다. 


아파트 지하 전기실에서 연기가 난다 하니 어마어마한 소방차들이 출동했다. 

신고한지 5분도 안지나서 119 구급대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와... 우리나라 소방 시스템은 정말이지 전세계 탑 오브 탑이구나 라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서 줄줄이 들어오는 빨간 소방차들 사이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노란 소방차. 

무슨 차인지 몰라 찾아보니 화학 소방차라고 한다. 

전기 관련 화재라 해서 특수 차량이 온 것. 


상황 발생 후 15분 내에 모든 소방차들이 아파트로 진입했다. 소방관님들은 그 아침, 이 찜통 더위에 진압복까지 다 입고 오셨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대한민국 소방 진짜 짱이다. 저번에 집 뒤 인왕산 산불때도 봤지만 우리나라 소방 시스템은 정말 최고다. 


다행히 전기가 끊기며 비상 발전기가 돌면서 연기가 난 것이라 아파트 화재는 아니었다. 휴.


화재가 아니라 너무 다행이지만, 전기가 당장 들어오지 않으니 모든 것이 올스탑이다. 

우리집 화장실은 창문이 없어서 불이 안들어오면 암흑이라 출근 준비를 할 수가 없다. 

어찌저찌 핸드폰 불빛으로 씻는다 한들 드라이기나 선풍기를 쓸 수 없는데 머리는 어떻게 말린담? 


이 뜨거운 여름에 냉장고가 전원이 나갔으니 음식은 다 어떻게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당연히 동작하지 않으니 점점 땀이 난다. 


정수기가 멈추었으니 당장 마실 물이 없다. 

이런 갑작스러운 정전에 대비해서 생수를 사놓았어야 하는 것인가? 


간단히 무엇을 먹으려 해도 커피머신과 전자렌지와 인덕션이 동작하지 않는다. 


전기가 나가니까 모든 일상이 멈추었다. 

결국 남편은 회사에 오전 반차를 냈다. 나는 다행히 방학.

한밤중에 전기가 나간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이라 그나마 보이니 망정이지 밤이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집에 손전등이 있었던가? 향초는 있었던 것 같은데?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게 마비되는구나. 


두시간 정도 지났을까. 가전제품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오! 복구됐나봐! 한전 열일해주셨네... 


경비실에 내려가서 물어보니 까마귀가 전봇대의 변압기를 건드려서 순간 정전이 된 것이라 한다. 

까마귀는 그럼 고압선에 감전되었는가...


그래도 까마귀 때문이 아니라 만약 변압기가 폭발한 것이었으면 대형 화재로 이어지거나(이번에 또 인왕산으로 불이 번지면 절레절레), 교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문제가 심각해졌을 것인데 그나마 빨리 해결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요즘 유난히 변압기 폭발로 정전이 되거나 큰 화재로 이어지는 뉴스들이 자주 보인다. 얼마 전에도 역 근처에 변압기가 터져서 도로에 특수차량부터 온갖 소방차들이 잔뜩 서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전기 사고가 자꾸 나면 소방서와 한전에 업무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오지라퍼스러운 걱정이 든다. 요즘같은 징그러운 폭염에 전력 사용량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그에 따른 과부하에 전기 설비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서울시에서는 노후 공동주택에 대해 전기설비 안전 진단을 하고 고효율 변압기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수요는 넘치고 공급은 더딜 것이며 예산 역시 부족하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은 계속 진행중이고 20년 넘은 노후 주택들의 변압기는 언제 고장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 지은 주택들은 이렇게 많은 전기 사용량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료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아파트 가구당 전력 수요를 1~2킬로와트 정도로 계산해 변압기를 설치했는데 요즘은 5킬로와트는 잡아야 한다하니. 거기에 이런 폭염에는 에어컨이 실시간으로 집집마다 돌고 있을테니 전력 과부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상황. 그나마 우리집 변압기는 까마귀가 건드려서 이참에 점검을 했을 것이라 당분간은 안전하겠지만 또 어떤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오늘은 이례적으로 한반도를 훑고 가는 태풍까지 상륙해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번 일을 겪으며 재난에 신속하게 대비하고 있는 소방, 사고에 대비하고 빠르게 복구하는 한전 등 나라의 시스템이 빠르게 작동하는 것을 체감했다.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문제가 생기면 또 달려와주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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