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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Aug 17. 2023

스페인에 방치된 관광객들

오늘자 포털을 달군 뉴스 중 하나는 스페인 홈쇼핑 여행상품 관련 이야기였다. 기사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홈쇼핑을 통해 스페인 패키지 여행 상품을 구매해서 떠난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여권과 짐이 든 버스가 사라지고 숙소에서는 미납금이 있다며 방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버스는 상태가 엉망인 차량으로 바뀌고 공항에 다 와서는 짐을 못 빼준다고 버스기사와 실랑이가 벌어져 경찰과 대사관 직원이 나와 해결했다 등등과 같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내용이다.


https://naver.me/G87EJKT7

부푼 꿈을 안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을지... 말도 안통하는 외국이었으니 (인솔자가 있다 한들) 많이 불안하고 무서웠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뉴스는 여행업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의 경우 헤드라인만 봐도  '아, 누군가가 또 현지 랜드에 돈을 안줘서 결국 팀 잡았구만?'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돈을 안줬으니 현지 상품들이 제대로 수배(예약)가 안됐거나 그지같은 퀄리티로 대체됐거나 팀이 '인질'이 되었겠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려면 패키지 여행의 상품 구조를 간단히 살펴봐야 한다.


패키지 상품은 우리가 아는 '여행사'(H투어, M투어, 인xxx,노xxx 등등)이 광고를 해서 모객을 함 - 각 여행사의 국내 거래처인 '랜드사'에 팀을 줌(예약함) - 랜드사는 해외 거래처인 "현지 랜드'에 예약(수배)를 함 - 팀이 출발함 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고객은 인터XX에 예약을 했지만 실제 여행상품을 운영하는건 인터xx의 직거래처도 아닌 '국내 랜드사'의 거래처인 '현지 랜드사'라는 것. 인터xx는 항공 블럭을 받아 해당 날짜에 손님을 모은 것이 가장 큰 역할이다. 여행사는 거의 현지에 예약을 직접 하지 않는다.(모든 대형 패키지사가 다 똑같다)


문제는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다보니 돈이 첫번째 대형 여행사에서 늦어지거나(몰아서 대금을 지급하니 현지 랜드는 숨이 넘어간다. 게다가 환율을 여행사가 정한 대로 주는 경우가 대부분-원래는 입금일 기준 송금보낼 때 환율을 적용해서 지상비를 정산한다) 중간 단계인 국내 랜드사에 돈이 멈춰서 현지에 미수가 깔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렇게 여행업의 고질병인 미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환율 떨어지면 송금해줄게', '다음 팀 나갈 때 일부 보낼게'하면서 차일피일 대금 지급이 미뤄지다 보면 현지에서는 이번 사태처럼 손님들을 '인질'로 잡게되는 것이다. 랜드에서 현지로 송금이 올 때 팀별로 정산금이 딱딱 맞춰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했고 대부분 몇만 유로/달러 등 뭉텅이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 수많은 미수금들은 코로나 시기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겠지...


지나가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렇게 미수가 크게 쌓이면 최후의 경우 손님들을 대한민국 대사관 앞'버릴'것이라 한다. 난 돈 못받았고 파산할거니까 알아서들 집에 가라고...

손님이 무슨 죄냐 싶지만 미수금 사태가 오죽 심하면 저런 얘기까지 나오나 싶다. 실제 현지에 깔리는 미수금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객은 여행상품을 계약할 때 먼저 계약금을 내고, 출발 얼마 전까지 대금 완납을 한다. 그럼 여행사는 이 돈을 받아 항공권도 사고 랜드에 예약금과 투어피(랜드피)를 보낸다.


현지는 그 돈으로 호텔, 식당, 버스, 관광지 등에 예약을 걸어두고 팀이 들어오기 전에 완납을 받아 각 곳들에 돈을 보낸다. 홈쇼핑의 경우 시리즈로 팀이 뜨기 때문에 방송이 나가기 전에 현지 랜드는 이미 모든 날짜에 호텔과 차량과 식당 등에 수배를 걸어놓는다. 보통 15+1foc 정도로 쫙 깔아두고 팀이 가기 전에 완납을 하는데 문제는 미수가 터지면 그때부터 미지급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오랜기간 거래하던 곳들이라면 일부 미수는 기다려주겠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기존 거래처가 망하거나 해서 새 거래처들이랑 일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어느 업종이든간에 신규 거래시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신뢰가 쌓일때 까지는 대금은 확실히. 안그러면 여행업에서는 기사에 난 것 처럼 소위 팀을 '깨버리는'경우가 발생한다. 솔직히 현지에선 이제 거래를 시작한 회사에서 돈을 못받았는데 뭘 믿고 내 호텔에 저 손님들을 들이겠는가? 손님들은 여행사에 돈을 다 냈으니 황당한 상황이겠지만 중간에서 그 돈이 어딘가에 묶여서 호텔이나 버스 회사는 돈을 못받았으니 그들이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가 없는것.


항공권은 완납하지 않으면 비행기 티켓을 주지않으니 그 비용은 칼같이 지불한다. 그래서 현지에 도착해서 일이 터지는 것이다. 현지에서도 깐깐하거나 인기있는 곳이라 예약을 꼭 잡아야만 하는 업체에는 절대 대금 지연을 하지 않는다.


패키지 팀은 현지 랜드에 미수가 깔린 경우 언제든지 호텔에 방이 없거나 식사가 준비되어있지 않거나 버스가 나오지 않거나 심하면 대사관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물론 이런 경우는 극악의 경우다) 물론 잘 놀다 들어오는 팀들도 많다. 그런데 언제고 내가 속한 팀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여행업을 특고업종까지 지정해서 나랏돈을 퍼부어 코로나의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오게 도왔는데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여전히 일으켜서 결국 외국에서 경찰과 대사관 직원들까지 해결하러 나갔다.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로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회사가 여행사라면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과 경험을 박살내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 여행사가 현지 예약까지 다 못해서 외주를 준 것이라면 끝까지 잘 확인하는 것이 의무인데 확정서 하나 받아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왜 아직도 모르는지. 숨넘어가기 직전이거나 넘어갈 쯤에 현지에 송금하는 행태는 언제쯤 나아질까.


여행에 관심이 많았고 애정했기에 해당 산업에 잠시 몸도 담아 봤었으나 뿌리 깊은 병폐에 실망하던 차 코로나를 기점으로 떠나온 지금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행 상품을 좋아하고 여행업이라는 산업이 건강하게 자리잡기를 원하는 마음은 여전하기에 답답한 마음을 기록해본다.


 년 전에 이 구조에 대해 열심히 써둔 글이 있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이 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다.

https://brunch.co.kr/@kkio090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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