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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n 26. 2020

예비 신랑은 소품_결혼식까지는

이 결혼의 주인공은 나야나

결혼 준비 과정의 중요 옵션인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는 두 사람의 예식 진행을 원활하게 만들고, 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비용도 상당히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비신랑은 그냥 운전기사, 들러리, 소품, 촬영용 장식품 정도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같이 돈 내서 하는 건데 왜 나는 소품이냐 하는 미혼 남성분들은 결혼 준비 해보시면 바로 알게 됩니다. 본인의 처지는 신부 외 기타 등등이 된다는 걸. 그래서인지 요즘은 스드메 비용을 여자쪽에서 더 많이 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제 남편도 준비기간 내내 '나는 윤머슴이다'를 되뇌더라고요.


예비 신랑의 소품 인생 1.  신부들의 로망 드레스샵 투어

 

여자들이 단 하루 웨딩드레스를 맘껏 입어보면서 공주놀이를 할 수 있는 날. 난생 처음 입어보는 웨딩드레스에, 다양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골라서 피팅도 해보고. 조명도 예뻐서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고 나도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저는 참 즐거웠지만, 남편은 제 드레스샵 투어가 끝나고 샵을 선정하고 나서야 턱시도를 구경해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입어본 드레스 만큼 턱시도도 골라볼 수 있는 줄 알았나봐요. 엄청 기대했는데. 현실은 저기 구석에 걸려있는 턱시도들 중에서 베이지, 그레이, 검정 중에서 고르세요. 끝. 게다가 남편은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인데 구비된 턱시도는 키가 큰 모델사이즈 였는지 마치 남편은 아빠 옷을 입은 아이 같은 모습 이었습니다.


드레스샵의 들러리 같은 턱시도가 맘에 안든건지, 거울 앞의 자신의 모습이 맘에 안든건지 식 전에 체형에 맞게 다시 재단해준다는 말에도 '여기 싫어.' 라고 하더군요. 결국 예복샵에서 정장을 맞추면서 턱시도 변형 서비스를 받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하면 내 몸에 옷을 꼭 맞춰준대~' 라며.


네. 윤머슴님 하고 싶은거 다 해요.


예비 신랑의 소품 인생 2. 두근두근, 대망의 웨딩 촬영


정신이 혼미할 지경의 다이어트와 각종 시술, 피부 관리 등으로 심신이 너덜더널 해진 저는 '이제는 포토샵이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남편과 함께 예약한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아. 외모 따위는 신경도 안쓰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이렇게 외모와 꾸밈과 존재감에 대한 욕심이 있는 윤야망씨인지 저는 미처 몰랐습니다. 드레스 샵에서 턱시도 적게 보여준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예복 타령 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미용실에서 제 헤어와 메이크업을 하느라 3시간 가까이 소파에서 기다린 남편은 1차 분노. 그렇게 기다려서 본인 헤어와 메이크업은 30분도 안걸려서 대충 끝낸 것에 대해 2차 분노. (결과물이 맘에 안든건 덤) 들러리 이모가 남편은 신경도 안쓰고 나만 졸졸 따라다닌 것에 대해 3차 분노. 촬영 중에 사진기사님이 '신랑님 자꾸 신부님 컷에 걸리니깐 저기 뒤로 가계세요' 라고 해서 극대노.

남편은 결국 자기도 결혼하는건데 왜 운전기사, 짐꾼, 배경으로 서있는 병풍, 신부 옆에 서있는 촬영 소품 밖에 안 시켜주냐고며 자기도 주인공 하고 싶다고 독사진 찍어달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사진 기사님은 찐 당황해서 '신랑님 여기로 오세요. 독사진 찍어드릴게요.' 그래봐야 비교도 안되는 신부와 신랑의 컷수. 압도적으로 신부 컷이 많습니다.


덕분에 신랑 후배였던 웨딩플래너는 그날 종일 남편을 달래가며 사진을 찍어줬답니다.


예비 신랑의 소품 인생 3. 파이널. 결혼식


이미 웨딩촬영 때 미용실에서 한바탕 한 기억에 아, 이 남자를 미용실 소파에서 장시간 기다리게 하면 오늘 망하겠구나 싶어서 남편은 저보다 늦게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남편은 예복집, 한복집 들러서 윤짐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했죠.


셔틀이 된 남편은 결혼식 당일에도 씩씩거리면서 미용실로 왔고 북새통 같은 미용실의 소파에서 또 대기를 했고, 그렇게 나온 본인의 헤어와 메이크업은 더더욱 맘에 안들었다고 합니다.


드레스까지 입으면 저는 잘 움직일 수 없었기에 대기실에 가만히 웃으면서 앉아있고, 남편은 식장 앞에서 손님 맞이에 인사에 사진사가 부르면 대기실에 뛰어와서 와서 또 사진 소품 역할에.....


정신없이 결혼식이 끝나면 이렇게 남편의 소품과 들러리 인생도 끝이 납니다.




슬프게도 제 주인공 역할은 이제 났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현실로 돌아오면 는 이제부터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남편 곁의 소품 또는 들러리 + 애 낳을 사람 + 며느리가 되어있더라고요. 제가 아이를 낳으면 이제 저는 없고 이름도 사라진 채로 누구 엄마로 위치가 바뀝니다. 단 몇 개월 주인공이었다가 평생을 남편 서브와 누구 엄마와 며느리의 위치에 있게 되다니.


며느리가 된 후 저는 계속 '나도 독사진 좀 찍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너는 남편 뒤에 가만히 있어라'라는 이야기를 듣는 상태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면 왜 이렇게 며느리라는 위치가 부당하고 힘이 드는 걸까요. 둘이 동등한 입장으로 결혼을 했는데 저는 아들의 아내로 존중받는 것 보다는 아들의 아내라서 막 대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시부모님에게 주인공은 아들 뿐이니까요. 저는 그 주인공인 아들의 들러리고요.


마음이 슬프고 뭔가 나 자신이 엑스트라 같은 기분이 들면 남편에게 이야기해봅니다.

'나 주인공 하고 싶어.'


이 결혼 생활에서 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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