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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Mar 10. 2021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길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냥 미움받는 것이라면 그만한 스트레스가 없을겁니다.


친구 사이나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해가 있거나 상황이 꼬여서 미워하고 싸우고 언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트러블이 나면 굉장히 신경이 쓰이고 서로 불편한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고 그부분이 해결되면 그 관계는 다시 괜찮아지죠.


그런데 평생 가족이 될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나를 탐탁지 않아한다면 평생이 괴롭습니다. 이유가 딱히 없으니 해결할 도리가 없잖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며느리'라는 존재 자체는 딱히 이유 없이 그냥 맘에 안들어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시댁과의 갈등 관련 상담 글에 '잘 하려고 애쓰지 마라.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욕먹는게 며느리다' 라는 이야기가 참 많더군요. 왜일까요?

https://blog.naver.com/rlatjdgus195/222203430889


결혼을 결심하는 여성들은 부부가 되는 것은 생각해도 며느리가 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앞으로 남편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들과 잘 지내겠다는 각오 정도를 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며느리들은 결혼을 하면 이제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시댁과 지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많은 경우 마지못해 '내 아들이 널 좋다고 하니  하는 걸 봐서 받아는 줄게'라는 느낌을 주거무료 일꾼이라도 들인 양 '이제 며느리 봤으니 난 좀 쉬어야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상과 달리 자꾸 불편한 일이 생기다 보면 어느순간 시댁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집니다.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학습되어 온 유교걸의 역할 인식 때문인지 몰라도 여자들은 괜히 시댁에서 예쁨 받고 싶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제발 나서지 말고 기본만 하라고, 그것도 어렵다며 기혼자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충고를 해도 '나는 당신들과 달라. 난 사랑받을 거야!' 라면서 무수리를 자처하는 경우들이 참 습니다. 그러다 서운한 소리 한 방에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집니다.  


그래도 꽤 많은 부모님들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전해지는 며느리병에 대해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시면서 공자나라 탈피를 하고 계시는 상황입니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저희 부모님 역시 두 딸이 결혼하고 나서 생각이 참 많이 바뀌셨습니다. 딸이 있는 집들은 시집간 내 딸 입장을 고려하다보니 그런 것이겠죠. 역지사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들만 있는 저희 시댁같은 집들은 어떡하나요?)




도대체 이 나라의 며느리는 왜 이렇게 힘들고 별다른 이유 없이 책잡히고 하대 당하는지에 대해 생각 본 결과 이건 우리나라에 뿌리 깊은 유교사상 속 남존여비 +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의 희생양인 엄마들의 아들 집착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저 역시 제사는 큰 아들이 모셔야 하는 집에서 은연중에 남동생과 차별당함을 겪으며 자랐으니까요.


평생을 애지중지 키운 아들과 결혼하겠다고 찾아온 며느리에게 '내 아들을 네가 이제 차지하겠다고?'라는 크고 작은 적개심을 드러내는 거죠. 게다가 며느리는 여태 부모님들이 살아왔던 시대의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나타납니다. '나는 평생을 희생하며 시댁과 남편에 맞춰 살아왔는데 얘는 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거지?'


여기서 만약 아들이 팔불출적인 모습을 보이면 게임 끝났습니다.

'나도 내 아들에게 받아보지 못한 무한한 애정을 네가?'라는 괘씸한 마음이 번집니다.


자기주장 강하고 의사표현 확실한 요즘 며느리의 모습도 꼴 보기가 싫습니다. 직장 다니고 돈 좀 번다고 내 아들과 우리 집안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혹시 얘가 우리 아들보다 돈을 더 벌어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이 다 듭니다. 쯤 되면 아들내외의 결혼생활은 절대 평탄할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애지중지 해서 키운 아들일수록 이 아들들은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최악의 결과물이 '우리 엄마는 안 그래. 다 너를 좋아해서 그러시는 거야. 예민하게 좀 굴지마.'입니다. 대체 좋아한다 왜 이리 며느리를 괴롭게 만드는 걸까요?




며느리들을 가장 쉽게 괴롭히는 멘트는 '서운하다.' 입니다. 이 말의 속뜻은 '내 기대만큼 며느리가 잘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크게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자꾸 듣게 되면 며느리들은 멘붕에 빠집니다.


며느리와 시댁 문제에서 굉장히 자주 나오는 이 말은 순식간에 며느리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어른들 마음대로 기준을 세워놓고 거기 맞지 않는다며 졸지에 어른들에게 잘 하지 못하는 며느리로 만들어 괜한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말이니까요. 친구 사이라면 무엇 때문에 서운한지 말해보라며 대화라도 해보겠는데 며느리한테 서운하다는 것은 해결방법이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건 아들에게는 서운하지 않은데 며느리에게만 서운한 것이니까요.


사실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바라거나 기대하는 부분이 크니까 서운한 감정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나 서운해' 그러면 상대방에게 좋은 소리 안나옵니다. 바로 '내가 뭘 어쨌는데? 나도 너한테 서운한거 많거든?'이라며 싸움나기  좋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착한 며느리 병에 걸린 채로 결혼을 합니다. 때문에 시댁에서 어떤 싫은 또는 불편한 요구들이 와도 일단은 참습니다. 그렇게 예쁨 받고 싶어서 종종거렸는데 서운하단 말을 들으면 멘붕이 옵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이건 아니라고 말할 일인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들의 요구이기도 하고, 내가 싫다고 하면 나를 미워할까 봐, 그리고 저분들은 어른들인데... 나는 좀 불편하지만 그냥 맞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요구들은 단번에 끝나는 것들이 아니고 평생을 참자니 엄두가 안 납니다. 그렇게 계속 불편함이 쌓이면 불만이 되고 결국 부부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말합니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 이 결혼에 우리는 어디 있어? 그리고 당신 부모님은 나보고 왜 자꾸 서운하다 하시는건데?'




사랑하는 사람과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는데 이 K-며느리라는 위치가 참 힘듭니다. 사우나에서, 찜질방에서, 등산로에서, 마트에서, 커피숍에서, 식당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속에 저리 욕먹으면 저 며느리는 천 살까지 살겠다 싶은 사람들만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 며느리그들의 이야기에서처럼 정말 이상한 정신병자이거나 인격장애자이거나 하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아들이 그런 미친 사람 또는 비정상적인 여자와 결혼했을까요?


며느리는 아들을 뺏어간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못마땅해하거나 미워할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평생을 걸고 신중히 선택한 사람인데 왜 그리도 사랑하는 아들의 선택을 못미더워 하는걸까요?


그리고 며느리들도 시부모님에 대해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면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다 하게 되어 있는데 원치 않는 말과 강요만 계속 받으면 하려던 것도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새로 생긴 며느리와 자주 소통하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을 이해는 합니다만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받을 때 까지 전화를 걸고 이제 막 결혼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며느리에게 갑자기 자주 봐야 정든다며 잦은 가족모임을 강제하면 그 며느리는 백이면 백 튕겨나갑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방통행이나 강압적인 관계나 한쪽이 무조건 희생하는 관계는 절대 정상적인 관계일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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