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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Mar 10. 2021

며느리와 제사의 상관관계

웹툰 며느라기


며느라기에서 남편이 자기 집 제사에 가자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기도 일을 돕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아내인 민사린이 매우 어이없어 합니다. "너네 할아버지 제사인데 날 도와준다고?'


무구영은 자기 할아버지 제사인데 왜 와이프를 도와준다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말했을까요?


무씨 집안 제삿상을 여태 며느리인 '엄마', 며느리인 '여자'가 차렸기 때문입니다. 며느라기에서 어린 여자 조카가 그린 그림은 무씨들은 정장입고 젠체하고 성이 다 다른 여자들은 주방에서 일하고 상차리고 있는 제사의 현실을 명확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여태껏 여자가 주로 주방에서 밥을 하는 사람이라서 음식상이 필요한 제사를 주도하게 된 것일까요? 투자전문 유튜버 슈카는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주방의 종말'을 이야기했는데 요즘같은 밀키트와 배달 음식의 시기 즉 주방의 종말 시기에는 누가 제사를 주도하면 되는걸까요?




지난 구정, 5인미만 집합 금지 명령 중이니 며느리만 내려오라 한 시댁도 있었다는 뉴스를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2021년인데 아직도 며느리가 제삿상, 차례상 차려주는 사람이라는 것에 꽤 놀랍더군요. 영화 '큰엄마의 미친봉고'를 보면 전 부치고 제사를 준비하던 며느리들이 큰엄마의 주도 하에 봉고를 타고 튀죠. 그 이후에 벌어지는 남자들의 촌극은 가관입니다.

큰엄마의 미친봉고

제사와 차례는 여태껏 참 말이 많은 문화였습니다. 제사와 관련된 푸념들 참 많습니다. 이 푸념들은 결혼한 여성들에게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결혼을 했더니 며느리가 되어 갑자기 제사의 의무가 따라온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살아계실 때 잘하지. 돌아가시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게 무슨 소용이람"

"종가집에서는 제삿상을 남자들이 차리고 상에는 간단한 음식만 올라간다던데. 게다가 며느리들한테는 품위유지비를 준다며?"

"큰어머니 돌아가시니까(또는 큰집이 이혼하니까) 이제 제사를 안지내더라?"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간다더라"

등등


그리고 제삿상 차릴 땐 이런저런 법도도 참 많았습니다. 홍동백서니,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상에 올리면 안된다느니, 제사 음식은 만들면서 맛보면 안된다느니 등등


경상도 집안 큰집 맏이였던 저는 어릴 때 제삿상에 올라갈 전을 부치면서 집어먹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은 적 많았습니다. 제삿상에 올라가는 음식을 네가 왜 먼저 먹냐면서. 조상님 드시고 나서 드시는거라고.


정말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제삿날에 오셔서 드시고 가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사 음식은 먼저 먹으면 안된다니... 그래서 엄마 몰래 부쳐놓은 전을 집어먹곤 했습니다.  


저는 제사가 싫었습니다. 제사 전후 기간은 엄마의 짜증 기간이었거든요. 어릴때야 잘 몰랐으니 엄마가 대체 왜 저 기간만 되면 힘들어하고 예민해지시는 걸까 생각만 하고 그 기간에는 엄마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왜 박씨 집안 제사를 그 핏줄이 아닌 엄마가 주관해야 하는 것일까 의문스러웠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그러셨죠. 너는 제사 없는 집 찾아서 시집가라고. 한 번은 제사 음식을 사자고 했다가 아빠한테 엄청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상에 올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랬던 저희 집도 이제는 제사 음식을 사는 것 반, 만드는 것 반으로 바뀌었고 제사도 절에 모시고 합치고 하는 과정을 거쳐 간소화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그렇게 되어간 것이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결혼적령기에 결혼할 사람의 선택 기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 없는 집일 것. 어릴 때 부터 보아온 제사의 스트레스를 익히 아는 바 결혼해서 남편제삿상을 차릴바엔 그냥 우리집 제삿상을 차리는게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제가 이 내용을 묻자 남편은 제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와 관련된 뉴스 중에 "며느리 들이자 병풍산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설마 진짜 그런집이 있나 했는데 있더라고요.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시댁에 인사를 갔는데  "이제 며느리도 봤으니 제사를 지내야 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황당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님이 반대하셨지만 결국 제사는 생겼고 지금도 이 내용은 부부싸움의 트리거입니다.


이런 논리면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은 전부 다 제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제삿상을 차려야됩니다. 몇 세대를 거쳐서 내려오면서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은 집은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제사는 보통 큰집서 지내고 큰집으로 사람들이 모이는데 왜 큰집이 아니라던 시댁은 없다던 제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평생을 제사를 모셨고 제삿상에 감히 시장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올리냐면서 제 등짝을 때리셨던 저희 부모님은 얼마 전 제사에 대해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제사는 우리까지만 지내고 우리 대에서 절차 밟아서 정리 할 테니 너희들은 상차리느라 싸우지 말고 우리 가고 나면 우리 제삿날에는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식당에서 밥 한끼 먹으면서 우리 생각을 해달라." 라고. 만일 제삿날이 평일이면 주말에 모여서 밥을 먹으라 하시더라고요.


다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이가 모두 사라지면 저승에서 완전한 죽음-소멸-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제삿상을 차리는 노동 대신 'Remember me'를 요청하신 것입니다. 저도 제사의 본질은 '떠난 분을 기억하기' 라고 생각합니다.

코코

본질의 중요한 의미는 다 사라진 채 남자들은 대충 거들고 성씨 다른 여자들이 허리가 부러져라 전을 부치고 탕국을 끓이고 생선을 삶고 해서 상에 한가득 차려 올리는 제삿상의 의미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고인을 기리는 자리에 왜 가족들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며느리들은 피로를 호소해야 하는 것일까요. 누가 제사에 참석을 하니 안하니, 며느리는 연차라도 내고 와서 일을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니니 하는 구시대적인 논쟁은 정말이지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성씨들 보다 당연히 고인과 함께한 시간이 적거나 없었으니 기리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는 여성들, 며느리들의 허리를 주방에 갈아넣은 제삿상을 받는다고 그 조상님이 기뻐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잘 모셔야 조상님이 복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제사를 안모셨다고 해를 끼치고 벌을 주는 악덕 조상을 가진 집안이야말로 진짜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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