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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n 26. 2020

딸 같은 며느리를 찾으시나요

우리 엄마는 말씀 하셨지. 꼭 너같은 딸 낳아라.

외동아들 또는 아들만 있는 집안과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이 대부분 마주하는 난감한 문장이 있습니다.


'딸 같은 며느리'


딸과 아들이 같이 있는 집들은 딸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딸 같은 며느리는 재앙이라는 것을 엄마들이 아주 잘 압니다.

아들만 있는 집은 딸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막연히 어떤 환상 같은 것을 갖고계신 듯 했어요.


저는 아들 둘인 집의 큰 아들과 결혼했는데 어김없이 이 난제에 부딪혔습니다.


남편은 시부모님께 '당근이가 왜 우리 딸이야? 장모님 딸인데? 얘는 며느리지' 라고 선을 그어줬습니다.

그랬더니 시부모님은 남편한테 '저런 망할놈을 봤나?' 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이 상황에서 왜 내가 시댁의 딸이 되어야 하는지?

남편은 맞는 말 했는데 왜 망할놈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집 딸인데요...



어머님, 그건 제 취향이랑 좀 달라요....


결혼 전에 남편이 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너에 대해 엄청 기대하고 있다고.

그니깐 거기에 전부 맞춰드리려고 하면 너만 힘들테니 적당히 자기가 끊겠다고.

엄마는 널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할지도 몰라.


음? 우리 엄만 나보고 살 좀 빼라고 맨날 구박했는데 왠 인형? 어머님도 내 외모 아시잖아.

 

남자만 셋인 집에 어머님도 여성의 존재가 있었으면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선보라고 그렇게 들들 볶으셨대요.

'며느리' 라는 명칭의 여성과 '딸'처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셨던 것 잘 압니다.


처음엔 옷도 사주시고, 가방도 사주시고, 악세사리도 사주시고, 신발도 사주시고....

그동안 딸이 없어서 못하셨던 쇼핑을 맘껏 하셔서 즐거우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피스를 사두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주시는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저만의 코디법이 있고, 좋아하는 컬러나 뭐 그런 개취(개인 취향)가 있잖아요. 다른거 다 떠나서 옷은 '사이즈'라는 것이 있는데..... (운동화 사주실 때가 젤로 좋았다는)


어머님 눈에 예쁜 물건들이 저랑 맞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면 문제였을까. (괜찮은 것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인형같이 예쁜 몸매가 아닌 저는 옷 선물이 그렇게 스트레스였습니다.


지난번에 주셨던 가디건은 제 팔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낑겨 넣으니깐  내복같던데.....


여성여성한 원피스라니. 뚜둥.


그 연락을 받은 뒤로 일주일 동안 풀때기만 먹고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두 시간씩 타고 그랬습니다....

시댁 방문하는 날, 급히 구매한 비싼 보정 속옷도 입었어요.


다행히 칫수를 좀 큰 걸로 사두셨더라고요.

비싼 보정 속옷 덕분인지, 지난 일주일간 하늘이 노래지도록 안먹고 급 다이어트를 한 덕분인지.

원피스의 지퍼는 잘 올라갔습니다.


다만 일주일 내내 배고픔에 쩔어서 야수처럼 변한 저를 감당하느라 지옥 문 앞에 백만번 다녀온 남편은 결국 '이런거 자꾸 사주지 말고 얘 맘에 드는거로 알아서 사게 그냥 돈으로 줘' 라고 했다가 또 망할놈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 천하의 나쁜 며느리가 됐습니다. ㅠㅠ

그럼 그 동안 사준것도 싫었다는 거냐. 말을 하지 이렇게 되어 버렸더라고요. -_-


제 의사와 달리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해 졌습니다.


사주신 물건은 꼭 인증을 해야하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거든요.

다음 시댁 방문 때 입고, 들고, 신고 가야 된다거나, 어디 다른데서 착용중인 인증샷을 보내야 한다거나.

받아놓고 아무 반응 없는건 선물해주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어머님의 인형 놀이는 막을 내렸습니다.



너 같은 며느리 볼까봐 무서워서 막내 장가 못 보내겠다


우리 엄마가 늘 하는 레파토리 중,


1. 너 같은 딸 꼭 낳아라.

2. 너 같은 며느리 볼까봐 막내 장가 못 보내겠다.


그럼 매번 전 이렇게 말했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데 가끔은 진짜 저같은 딸을 낳을까봐 두려운 적이 있었던 적도 있긴 해요. ㅎㅎ


저희집은 딸 둘에 막내 아들 하나의 80년대 출생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남매 구조의 집입니다.

저희 막내동생은 늘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누나들같은 여자 만날까봐 무서워서 연애를 못해'

'누나들 때문에 여자에 대한 환상은 없어진지 오래야'

'난 저 큰 코끼리랑 작은 코끼리땜에 장가 못 갈것 같아'


거짓말하고 있네. 연애 잘만 하드만.

그리고 누나들이 단련시켜 놔서 눈만 봐도 여자 마음 알게끔 셋팅 해줬는데 고마워서 절 하진 못할망정.


어릴적부터 맞을까봐 생존 본능으로 장착한 여자에 대한 눈치 백만단 때문에 그렇게 남동생 옆에는 대학교 때부터 여자 동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더랍니다.


엄마는 막내 장가갈 땐 니네 둘은 이민가서 사니깐 시누이 없다고 하겠다 하셨습니다.

니들은 결혼식만 참석하라며...

그래서 저는 미국, 둘째는 영국에서 왔다고 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까지 다 셋팅해 뒀는데 왜 때문인지 얜 아직 미혼이네요?



딸은 엄마가 밥 차리는 동안 소파에 누워 있을 수 있다


시부모님이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하셔서 며느리는 집에서 하던대로 시댁에 들어가자마자 쇼파에 드러누워서 '엄마 밥줘' 를 시전합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어머 왜 내가 니 밥을 차리니' 라고 한 뒤 딸 타령이 쑥 들어갔다는 유형의 이야기들이 참 많이 올라옵니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딸' 이라는 포지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딸과 며느리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 엄마가 밥차리는 동안 소파에 딩굴러 있다가 '수저 놓아라' 라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서 수저통 들고 식탁에 가는 적이 많다.(딸) vs 가서 앉아있어라 라는 말을 들어도 주방에서 눈치보며 발 동동 구르면서 얼쩡얼쩡 서있다가 상차림에 크게 기여한다.(며느리)


-> 물론 엄마 도와서 딸들도 상차리지만, 식사시간에 뭘 급히 하고있거나 해서 밥 차리는 것을 못 도와드려도 딸은 딱히 엄마의 눈치가 보인다 뭐 그렇진 않죠. 엄마도 그냥 쟤가 바쁜가보다 라고 생각하시고 밥먹어라! 소리칩니다.


* 방 안에 디비져 있다가 엄마가 '밥 먹어라' 하면 나와서 밥 먹고 그릇 싱크볼에 던져두고 다시 방에 들어간다(딸) vs 시부모님 눈치를 보며 가시방석에 있다가 재빠르게 상도 차리고 밥도 미소 띄우면서 열심히 먹고나면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며느리)


-> 딸은 자다가 부스스 나와서 눈곱 떼면서 밥 먹으면, '세수는 하고 밥상에 앉으라'고 구박은 받을지언정, 미소를 띄며 리액션을 하며 밥 먹을 일은 없죠.


미소를 띄며 리액션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 우리 엄빠는 '저게 미쳤나' 라고 생각하실 듯 하네요.


저는 시댁에서 설거지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이 저한테 매번 과일 깎으라고 하시고는 어머님께서 설거지 하셨거든요. 설거지봇이 되는 며느리들도 많다는거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네요...


엄마는 저와 제 여동생에게 설거지를 잘 안시키셨습니다.

어차피 결혼하면 계속 해야 될 거 시집가면 해라, 여자 손망가지면 보기 싫다. 라고 하셨죠.


그래서 전 미혼이었을 때도, 결혼한 후에도 설거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습니다.


* 엄마에게 서운한 점이 있으면 엄마한테 바로 얘기하고 울며 불며 싸운다.(딸) vs 서운하고 힘든 점이 있으면 속끓이다가 남편을 잡는다.(며느리)

-> 시부모님께 엄마,아빠한테 하는 것 처럼 할 수 있을까요? 전 엄빠한테 한 거 1/10도 안했는데... 뭐 저런 드센애가 다있냐 소릴 들었습니다.


* 반말 vs 존댓말


-> 각 집안 분위기 차이별로 있겠지만 저는 부모님랑 반말로 대화 하거든요. 우리집 애들 모두.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대부분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부모님이랑 반말로 대화합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이랑 반말로 대화하는 집 있나요? 못본 것 같은데...

그리고 엄마,아빠가 아니고 어머님 아버님 같은 극존칭으로 호칭을 하죠.

제가 저희 부모님께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 라고 부르면 '쟤가 어디 아픈가' 또는 '저게 어디가서 사고쳤나' 라고 생각하실 듯 하네요.


딸은 엄마와 반말하는 존재입니다!



딜레마 최고조 지역, 찜질방과 목욕탕


딸 같은 며느리 사태의 끝판왕은 목욕탕 & 찜질방입니다.

사바사지만 사춘기를 거치면서 여자분들은 엄마랑도 목욕탕 같이 안가는 경우들 많아요.


저도 그시점 즈음에 엄마랑 목욕탕을 안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목욕탕에 가보면 여성들의 연령대에 중, 고등학생은 별로 없잖아요?


그리고 많은 젊은 여성들은 탕 목욕 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모두가 다 벗고 몸담그는 탕은 안들어가거든요.


이런 상황에 시어머니랑 목욕탕을 가야한다 생각하면 음.

지하 오백층까지 땅파고 들어가서 숨어있을 겁니다.


엄마랑도 목욕탕 안가는 여성들이 많으니,

제발 며느리랑 목욕탕 가는 로망 갖고 계신 분들은 그 로망 없애셨으면 해요.

세신사분한테 만오천원 주면 등 밀 수 있어요.


뭐 어느집 며느리는 시어머니랑 같이 목욕탕 다닌다더라.

특별 케이스니깐 일반화 안하셨으면 합니다.


남편이 장인 어른이랑 목욕탕을 같이 간다. 이거 이상하잖아요. (남자들은 안 이상한가?)

혹시 제 글 보시는 분들중에 이런 남자분들 있으시면 의견 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근 30년 가까이 다른 집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갑자기 엄마와 딸이 될 수는 없어요.


말 안듣다가 엄마한테 등짝맞고 울며불며 쌓아온 오랜 세월 없이,

전혀 모르고 살다가 아들이 매개가 되어 만난 사이에서 며느리가 갑자기 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직 며느리는 아들과 사는 것도, 시부모님을 만난 것도 너무 새로운 상황이라 적응하는데 허우적 거리고 있거든요.


오랫동안 착실히 이런 저런 시간이 많이 쌓이고 나면 그 이후엔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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