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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쥬스 Jul 01. 2020

며느리의 전화 공포증

아들은 안 해도 며느리는 해야 하는


저희 친정은 일전에 우리가한식 공모전에 출품한 내용에도 밝혔듯이 경상도 집안입니다. 아빠는 말씀이 별로 없으셨고, 저와 동생들이 집에서 떠들면 시끄럽다고 종종 혼내셨습니다. 우스개소리로 경상도 남자들은 하루에 단 3마디만 한다고 하잖아요? '밥도, 아는, 자자 (밥 줘, 애는?, 잠자자)'


저희집은 이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아빠는 '용건만 간단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전화기를 붙잡고 오랜시간 떠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죠. 아빠는 할말만 하고 우리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전화를 끊으셨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빠 전화 내가 먼저 끊어보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채 지금도 ing  입니다. 엄마의 최고 불만이 '아빠가 전화 해서는 본인 할 말만 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인 것도 여전하고요. 저는 뭐...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말한 적 참 많았습니다. 그런 아빠도 나이가 드셨는지 요즘은 가족들 얘기를 많이 듣고 계시더라고요.

 

서운하다

폴더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카톡이 필수가 된 메신저 전성시대가 왔을 때 전 너무 좋았습니다. 콜 포비아는 아니지만 전화보다 메세지로 내용을 간단히 전달하는 것이 편했거든요. 전화는 걸려오면 받아야하는 일방적인 푸시라면, 만나는 것과 메시지는 내가 컨트롤 할 수있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걸려온 전화를 안받는 경우 수신 거부라는 불편함을 전달하지만, 만나는 것은 서로가 시간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상호성을 갖고 있고, 메세지는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에 보고 답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자율성을 갖기 때문에 일방통행인 전화와는 엄청 큰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랬던 저는 결혼을 하고 나서 빌런이 됐습니다. 시부모님이 저에게 '며느리 목소리 듣기 참 힘들다' 라고 하셨거든요. 10분 거리에 사는 엄마랑도 완전 가끔 보고 가끔 통화하는데 어려운 시부모님이랑은 무슨 얘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그리고 목소리 듣기 힘들다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그냥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네, 저는 청개구리 고기를 먹었습니다.


남편은 가운데 껴서 등이 터지자 결국 그럼 자신이 집에 있을 때 같이 전화를 하자는 솔루션을 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제가 따로 자주 전화 안한다고 서운하다 하시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전화하는 것이랑 제가 따로 전화하는 것이 뭐가 다른지 지금도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또 고민에 빠집니다. 대체 왜 때문에 매번 서운하다고 하시는거지?

아니 그리고 제발 두 분이서 내용 좀 공유하시면 안될까요? 각자에게 전달된 내용이 공유된 케이스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힘든 전화를 왜 두 번씩 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안했다고 또 서운하단 소리를 들어야 하는것이 과연 맞는 상황인가요.


가족 단톡방


저희 집 가족 단톡방은 일정 공지용입니다. 년 중 큰 행사가 몇 번 있죠. 가족들 생일, 어버이날, 명절, 연말연시. 그리고 친척들 경조사. 식사를 어디서 할것인가, 언제 모일 것인가 외에는 단톡방에서 별다른 얘기가 오간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동생이 아기를 낳고 나서는 가끔 조카 사진이 올라오는 정도? 그나마도 애기들 크고나니까 안올라옵니다.


이러던 중 시댁 단톡방에 제가 초대되고 나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는 왜 애니메이션 가득 첨부된 글귀와 꽃과 나무, 그리고 시부모님 사진이 이렇게나 많이 올라오는지. 아들은 피드백이 없거나 기계적 리액션을 하니 화살이 저에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모티콘을 줍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까이꺼 삼천원이면 사잖아요. 대답이 생각이 안나면 그때마다 이모티콘을 보냈어요. 그래서 카카오가 이모티콘으로 그렇게나 많은 돈을 벌었나봅니다. 결국 그 방은 꽃과 나무 사진과 반짝반짝 글귀들과 이모티콘이 가득한 방이 되었습니다.


저희집 단톡방에는 남편과 제부는 없습니다. 그들도 딱히 우리집 단톡방에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고요. 별로 오가는 내용이 없기도 하고 일정공지 올라오면 와이프한테 전달받으면 되니까요. 물론 막내인 남동생이 결혼해도 우리집 단톡방에는 지금의 멤버만 있을겁니다.


직업의 가치는 동등하다


맞벌이 부부인데 며느리에게는 업무시간에, 아들에게는 근무 외 시간에 전화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버는 돈은 중요하고 며느리는 거저 벌어오는 돈이라고 생각하시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저도 초반에 이런 일을 겪어보고 나니까 좀 화가 나더라고요. 업무시간에 시부모님 전화가 울리길래 뭔 일이 있는가 해서 받아보면 급한 일 아닌 경우가 태반이기도 했고요.


할머니 세대에서는 '여자가 나가서 벌어봐야 몇 푼 번다고 그러냐' 라고 하셨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남자나 여자나 같이 일하고 같이 법니다.


그리고 요즘 결혼하는 나이대로 봐서는 자식들이 대리, 과장급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 직급이 회사에서 제일 바쁩니다. 일을 제일 많이하는 직급이니. 직급을 떠나서 업무시간에 사적인 통화 하는거 윗분들이 곱게 볼 리 없습니다. 저도 전화 와서 '예, 어머님' 하면서 전화기 들고 나갈 때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이 참 불편했습니다.


업무시간 중에 통화를 할 일이 있다면 전화부터 걸기 전에 통화가 가능한지 문자를 먼저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굳이 급한 일 아니면 메세지 남겨두면 답장 올텐데 이조차 못 기다리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들한테는 그렇게 달달 안볶으시면서 왜 며느리는 전화 안받고 콜백 안하면 죽일년이 되는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아들은 듣지 않는 말


일전에 시부모님이 주말에 집에 오라고 아들에게 전화를 하셨는데 남편이 저랑 일정 상의해보연락하겠다고 했나 봅니다. 남편에게 이 내용을 전달받기도 전에(아마 퇴근하고 저랑 얘기하려고 했겠죠) 시부모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번주 주말에 오라고. 그래서 남편이랑 주말 일정 상의하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죠.(K-며느리는 가기 싫은데요. 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집안 행사가 있는 주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랬더니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쟤는 너한테 물어본다고 하고 너는 쟤한테 물어본다고 하냐고.

그리고 대체 남편은 그냥 본인이 이번 주는 쉬겠다. 가기싫다 얘기하면 되었을 것을 왜 저랑 상의한다고 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말 안들어도 며느리는 말을 듣겠지' 라는 마음으로 저에게 연락하셨는데 제가 원하는 답을 안드리니 화가 나신게 아니라면 딱히 저에게 화내실 이유는 없잖아요.....




아들이 연락이 없으니 며느리가 전화를 대신, 자주하기를 바라는 경우의 이야기들이 고민상담으로 올라오는걸 많이 봅니다. 오죽하면 며느리들 사이에서 '시부모님이 자주 전화하라고 하시니 전화를 걸고 인사 하고 가만히 있는다.(딱히 할 말이 없으니) 일단 말을 거역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하지 않느냐'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각만해도 불편하네요. 그 전화 사이로 흐르는 침묵. 그리고 꼭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하소연들을 보면 시댁과의 연락 문제는 친목의 문제를 떠나서 상하 관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연락을 자주 안하면 뭔가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듯한 불편함과 더불어 말 안듣는다, 서운하다는 평가를 받고, 그렇다고 연락을 자주 하자니 힘들고. 마치 하기 싫은 업무를 부장님이 계속 하라고 닥달하시니 억지로 울면서 해야되는 상황에 비유하면 비슷하려나요.


며느리들이 시댁과의 전화를 힘들어 하는 것이 엄마랑 편하게 통화하는 것이 아닌 어딘가 불편한 통화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마 전화는 소파에 누워서 받아도 별로 신경이 안쓰이는데 이상하게 시부모님 전화는 뭔가 바른 자세로 받아야 될 것 같거든요. 쉽게 대화하는 집들도 있겠지만 시부모님과의 연락을 힘들어하는 며느리들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자주 연락하라는 강제성을 띄거나 통화의 내용이 불편하다 하는 경우는 더더욱 거부감이 들 수 밖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강제적인 안부전화라도 받고 싶은 것이 대한민국 시부모들의 마음일까요?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저런 연락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저는 진심으로 제 안부를 궁금해하는 안부전화를 받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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