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표현들 중에는 유독 며느리들을 아프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에서 발현된 남존여비 사상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단어나 문장들로 보이는데, 근대 이후에도 여전히 그리고 2021년인 지금에도 빈번히 이 말들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말이라는 것이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시집가다+출가외인
여자들에게는 '시집을 간다'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엄마들 대화 들어보면 '누구 딸 언제 시집갔잖아.' 라고들 많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들 결혼한 얘기에는 그런 얘기 안쓰시던데. 간혹 쓰는 표현으로는 남자들에게는 '장가든다' 라는 말이 있죠.
시집을 가버리면 영영 못돌아오는 듯한 느낌이라 이 단어는 참 어감이 좋지 않아요. 게다가 시집간 여성을 출가외인(出嫁外人 : 시집간 딸은 자식이 아니라 남이라는 뜻)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가 윤씨 성을 가진 남자랑 결혼을 하고 나니 저희 작은아버지께서는 저를 '윤실이' 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저는 박씨 집안 딸인데 나의 성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게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 성을 붙여서 김실이, 윤실이 부르는 것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사용하는 어법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좀 슬펐습니다. 나는 우리집 귀한 딸인데 시집을 가서 출가외인이 되어버렸다니.
그래서 저는 꿋꿋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시집 간 것이 아니고 남편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저는 출가외인이 아니고 우리 엄마,아빠의 딸이자 남편의 아내입니다.'
'젓가락질 잘 못하면 시집가서 소박맞는다.'
저는 어릴 때 부터 손등을 맞아가면서 배웠는데도 젓가락질을 못 고쳤습니다. 사실 음식 집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젓가락질 못하면 시집가서 소박맞는다' 라는 말이 저희 아부지 피셜로는 '고집이 세보여서 그런거다' 라고 하셨습니다. 어릴때부터 맞아 가면서도 꿋꿋이 지 하고 싶은 대로 젓가락질을 한 애들이 젓가락질을 엉망으로 한다(저랑 남편) 라는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더라고요.
남편을 처음 만난 날 나보다 더 신기하게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를 만나서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남편에게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한다고 면박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단 왜 젓가락질을 잘 못하는 여성에게만 이런 말이 생겼을까요? 저보다 더 젓가락질을 희한하게 남편은 여태 '장가 가서 소박 맞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상하죠?
도련님과 아가씨, 게다가 서방님
며느리들이 '극혐'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도련님과 아가씨, 그리고 서방님.
며느리가 종X이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단어죠. 저는 도대체가 이 단어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시동생을 이름으로 불렀다가 시댁 친척들 앞에서 시아버지께 된통 혼났습니다. 그 이후엔 아예 호칭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남편의 남동생에게 내가 시종마냥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써야하는지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대갓집 종들이 양반집 아들, 딸에게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요?
게다가 시동생이 결혼을 하면 호칭이 도련님에서 서방님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함할 일이었습니다. 내 남편에게도 서방님이라고 안부르는데 대체 왜 시동생에게 서방님이라고 해야하는거지??
올해 국립국어원에서는 그동안 해온 실태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이 끔찍한 호칭을 없애고 자녀 이름에 삼촌이나 고모를 붙이거나, 00씨나 이름으로 호칭하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언어 예절 안내서를 발간했습니다.
이런 이상한 호칭은 얼른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면 합니다.
내조의 여왕
결혼을 하고 나니 저에게 양가 할머니들은 여자가 내조를 잘해야 남자가 바깥일을 잘한다 하셨습니다.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남편을 잘 받들어 모셔라 등등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바깥일 합니다. 그럼 남편도 제 내조를 잘 해야되나요? 그리고 요즘 조신한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나 밥과 관련해서 왜 어른들은 둘 다 잘 먹지도 않는 아침밥을 저에게 꼭 차리라시는지. 결혼하면 남편이 내리는 향긋한 커피향과 고소한 토스트 냄새에 잠에서 깨어나는 로망, 저도 갖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밥 얘기를 하자면, 어른들은 늘 며느리를 밥하는 사람의 위치로 대우하십니다. 반찬을 해주셔도 저한테 '차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왜 제가 차려야되나요?' 라는 질문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가 늘 속으로 꾹 눌러담기 일쑤.
유명 드라마가 생성한 이 단어, 이제는 각자 내조하는 것으로 해서 서로가 내조의 달인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이 단어는 정말 고쳐져야 되는 단어라고 봅니다. 외할머니는 한자로 바깥 외(外)자를 붙이고, 친할머니는 가까울 친(親)자를 씁니다. (이건 출가외인의 확장 버전인가...) 이미 단어에서부터 양쪽 집을 대하는 데에 너무 차별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난 우리 엄마가 오히려 더 가까운데, 왜 우리집에다가는 바깥 외자를 써야하는 걸까요?
'외'와 '친'을 떼고 그냥 할머니로 명칭을 통일하고, 구분을 위해서는 각자의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나 지역을 앞에 붙이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서울 할머니, 부산 할머니 이렇게 구분하면 좋잖아요?
그리고 친가, 외가 대신 그냥 '본가'로 지칭하는 것을 국립국어원에서 권장하고 있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옛 말에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었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남자가 목소리 크고, 여자는 그 밑에서 조신히 살아야 한다는 조선시대 마인드에서 나온 문구인 것 같은데 지금은 여자들도 목소리가 크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집안이 망한 경우 저는 못봤습니다. 오히려 살려냈으면 더 살려내지 않았을까요.
요즘은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하는 추세인데, 암탉이 안 울면 떡도 못먹지 않겠습니까?
이런 구시대적 문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죠?
여자가 곰살맞아야지
남편은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적입니다. 반면 저는 괄괄해서 엄마는 늘 저 털팔이가 어디가서 사고 치고 오는건 아닌가 걱정하셨죠.
제가 남편을 집에 인사 시켰을 때 어디가서 지랑 딱 반대인 사람을 데려왔다고 부모님이 신기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저에게만' 여자가 곰살맞아야 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곰살맞다' 라는 표현은 하는 짓이 예쁘고 다정스러운 모습이라는 뜻입니다. 남자도 곰살맞을 수 있어요!
성별에 따라 어떤 이미지를 강요하는 이 문장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며느리를 아프게 하는 말 중 탑 오브 탑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아내를 내쫓을 이유가 되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2.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3. 부정한 행위, 4. 질투, 5.나병·간질 등의 유전병, 6.말이 많은 것, 7.훔치는 것
옛날이었으면 전 1,2,6 에 걸려서 벌써 쫓겨나겠네요. 2021년에 살고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자주 사용하면 그 말이 힘을 갖고 결국은 그렇게 만들어 나가거든요. 지속적으로 일상 속에서 이런 불평등한 말들을 바꾸려고 노력하다 보면 뿌리깊은 남녀차이에 대한 인식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