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비행과 몇 번의 환승 끝에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그 어리버리함도 없이 우리는 돌아오는 비행기를 두 번이나 아주 잘 갈아타면서 메르스 때문에 방역이 한창인 인천공항에 내렸다.
델타항공을 타고 온 덕분에 외항사 비행기들이 사용하는 제2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메인 터미널로 가기 위해 터미널 연결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자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탑승하고 떠밀려서 강제 하차 당한 후, 전력 질주로 달려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다른 사람들을 멍하니 보면서 나와 남편은 둘이 마주보고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여보, 진짜 우리 이제 한국에 왔나봐. 다들 너무 급해.
그동안 너무 천천히 살았지.
그렇게, 드디어 몇 달간 오롯이 내 모든것이었던 배낭을 내려 놓을 수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도둑이 들까 방범 열쇠까지 만들어서 현관을 잠그고 간 덕분에 자물쇠를 세개나 열고 들어선 집은 4개월여간 괴괴히 쌓인 먼지, 그리고 마치 어제 떠났다가 돌아온 듯한 익숙한 우리의 냄새로 반겨줬다.
아. 우리 이제 정말 돌아왔구나.
여행 내내 내 어깨를 내리누르던 내 키 반만한 배낭을 거실에 내동댕이 치고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남편은 그동안 못마신 이슬이를, 나는 김치 칼국수와 삼각김밥을.
그렇게 우린 한국으로 돌아온 신고식을 마쳤다.
두 달 넘게 고산병에 시달린 내 폐는 그동안 부풀어있던 폐가 갈비뼈를 계속 눌러서였는지 고도가 제로에 가까운 서울에서도 여전히 숨쉴때마다 뻐근했고, 우유니에서 기압차로 인해 터진 눈의 실핏줄은 안과에서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안구미백술은 비추천이라고..) 그렇게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을 살고 있지만 떠나기 전의 우리와 돌아온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남들처럼 사는 삶이 맞는 삶일까.
튀지 말아라, 좋은게 좋은거다 라는 한국 사회에서 30년을 넘게 산 우리지만,
적어도 우리는 함께 '아니!' 라고 외치고 달려나갔고, 지금도 그 기억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잉까레일에서 만난 그 노부부처럼, 우리도 그 곳에 다시 돌아가자. ㅎㅎ
그럼 그 곳에서 긴 여행에 지쳐 입을 삐죽이며 옥수수를 물고있는 젋은 여행객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