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교환학생 D+6, 스페인 알리칸테 여행 둘째날 - 1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오늘은 정말로 파란만장한 날이었다. 그 이상의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가 없다.
(요즘 한국어를 지은이하고만 써서 점차 0개국어로 퇴화하는 중이라 그럴수도...)
아무튼, 오늘도 우리는 요란한 하루를 보냈다. 대체 왜 하루도 멀쩡한 날이 없는거지!
오늘의 원래 계획은 이랬다.
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핑크 호수를 구경하고,
②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뒤,
③ 여유롭게 3시 반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로 이동하기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경로로 이동해서 핑크호수를 구경하고,
알리칸테 숙소 → 알리칸테 버스정류장 →(고속버스)→ 또레비하 버스정류장 → 핑크호수
간 방법 그대로 숙소로 돌아온 뒤, 아래 경로를 따라 그라나다로 가면 되는 거였다.
알리칸테 숙소 → 알리칸테 ALSA 버스 정류장 → 그라나다 → 그라나다 숙소
준비도 완벽했다. 숙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 미리 캡쳐해 두었고, 짐도 호스텔에 성공적으로 맡겼다. (여담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며, 씨에스타로 인해 늦은 저녁을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체크아웃이 보통 점심 12시까지로 넉넉하다)
우리는 7시반 알람에 칼같이 일어나서 느긋하게 씻고, 준비하고, 옥상 테라스에서 든든하게 아침도 먹었다.
핑크 호수가 위치한 지역인 또레비하(Torrevieja)로 가는 고속버스는 1시간마다 출발하는데, 10시 차를 타면 될 것 같았다. 정말 고생해서 핑크호수를 보셨다던 모 블로거님의 포스팅을 참조해서, 우리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11시 반 경 또레비하에 도착했다.
그리고 터미널에 내린 직후 우리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레비하에서 핑크호수를 가는 법은 우리 둘 다 캡쳐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히지만 우리는 둘다 뼛속까지 계획형 인간들이다. mbti 검사를 하면 확실하게 마지막 자리가 J가 나오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실수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을 잠시 되새겨보도록 하자^o^
아무튼간에 이건 진짜로 큰 문제였다.
우리의 폰은 아직 텅 빈 네덜란드 유심을 장착한 상태여서 데이터도 쓸 수 없었고, 스페인에서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알리칸테, 그 중에서도 더더욱 오지인 또레비하에서 와이파이존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여기 사람들은 영어도 잘 못한다. 으아악!!!
우리는 블로그 포스팅을 읽었던 기억을 되짚어가며 끙끙댔다. 그러다 지은이가 기적적으로 두 가지 단서를 떠올렸다.
하나는 '고속버스역에서 나와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핑크호수까지 한번에 간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세인트 루이스' 라는 정류장 이름.
지은이의 기억력 덕분에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샅샅이 훑어서 우리가 타야 하는 마을버스로 추정되는 것을 골라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흐릿한 기억 속의 파편들을 짜 맞춘 것이므로 그걸 탄다는 건 반쯤은 모험이었다.
또한 시간상의 문제도 있었다. 이 마을버스의 배차간격은 40분이었으며, 노선도에 세인트 루이스 역은 두 개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핑크호수를 아예 못 보거나, 보더라도 한참 헤매다가 또레비하 버스터미널에 늦게 도착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또레비하 터미널에 늦게 도착한다는 건, 우리가 알리칸테 숙소에 늦게 도착한다는 의미이다.
알리칸테 숙소에 늦게 도착한다는 건, 그라나다행 ALSA 버스를 놓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예매해 둔 3시 반 출발 그라나다행 ALSA 버스는 배차간격이 무려 6시간이다. 그걸 타면 우리는 그라나다에 새벽 3시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계획해 둔 다음날 일정이 전부 어그러지게 되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ALSA 버스 티켓은 무려 왕복 8만원을 훌쩍 넘는 - 참고로 우리 비행기값만큼 비싸다 - 티켓이기 때문에 ALSA 버스를 놓친다는 것은 결국 시간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명백한 재앙이었다.
이 모든 계산을 끝낸 뒤 우리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우리를 핑크호수로 데려다줄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이 마을버스를 탈지, 아니면 핑크호수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다시 알리칸테로 돌아가서 안전하게 다음 여행지인 그라나다로 이동할 것인지.
우리의 선택은...엥 잠깐, 잠시만요!!!
고민하는 사이에 마을버스가 도착해 버렸다. 이걸 놓치면 40분을 또 기다려야 한다.
"까짓거 안되면 올 땐 택시 타자! 오늘 못 봐도 마지막 날에 다시 도전하자!"
라고 외치며, 결국 우리는 패기롭게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버스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음 역 이름을 안내하는 전광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 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이왕 버스에 탄 거, 겨우 이런 일에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구글맵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면서(데이터가 없어서 경로 검색은 안되지만 현재 위치 확인은 된다) 불안해하며 가던 중, 지은이가 갑자기 "어! 세인트 루이스!"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창밖을 보니 '세인트 루이스'라고 쓰인 허름한 간판이 보였다. 우리가 정류장 안내에서 봤던 두 세인트 루이스중에 이게 맞는건지 어떤지 모르지만, "일단 내리자!"
우리는 호들갑을 떨면서 버스에서 내렸고, 핑크호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알 수 없는 곳에 내린 우리의 운명은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https://brunch.co.kr/@kkiseo/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