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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번출구 Dec 21. 2018

할머니

수필 & 에세이 &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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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이는 곱슬머리. 기하학적인 무늬의 헐렁한 남방. 복숭아뼈가 훤히 보이는 고무줄 바지. 물 빠진 짝짝이 양말. 그 하많은 시간들을 가늠하기 조차 힘든 깊게 파인 주름. 듬성듬성 피어난 검버섯. 검게 그을린 앙상한 피부. 그 위로 도드라져 보이는 핏줄. 가뭄 때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손바닥.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컵에 담가 두었던 틀니. 바지 안쪽 마법의 주머니.  


한번은 할머니가 마법의 주머니에서 하얀색 사탕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탕이 눅눅해져 사탕을 감싸고 있던 껍질에 달라붙어 있었죠. 어린 마음에 너무 싫었던 나머지 먹지 않겠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참 못 됐죠. 그러고보니 할머니의 손을 제대로 잡아본 기억도 없습니다. 자주 잡아드릴걸 그랬나봐요. 이제와서 후회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어릴 때 느끼는 할머니와, 지금에 와서 느끼는 할머니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달라서 더 특별하고 가치가 있을 테죠.

저의 추억에서 할머니를 빼고 나면 그 끝은 알 수 없는 침묵만이 남을 것입니다. 세월은 많은 것들을 가져가죠. 건강과 에너지, 일과 의욕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 그러나 그 세월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 그 추억은 세월이 더해질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깊어만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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