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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번출구 Jan 09. 2019

뜨개질

수필 & 에세이 &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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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뜨개질 모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평소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뜨개질이라는 게 보통이 아니더군요. 장시간 오래 앉아 있는 일이야 평소 해왔던 일이라 크게 무리는 없지만, 우선 뜨개질바늘을 잡는 것부터가 고역입니다. 젓가락처럼 생긴 길다란 뜨개바늘을 양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실과 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일. 웬만한 인내심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풀에 금방 나가떨어지겠더군요. 


한 곳만 줄기차게 응시하고 있다 보니 눈이 뻑뻑하고 시려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어깨와 허리는 고통으로 아우성이죠. 잠깐 한 눈판 사이에 실이 잘 못 끼워지기라도 한다면 이건 뭐 마법사가 와도 어찌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세거나, 그렇다고 너무 헐겁게 했다가는 금방 티가 납니다. 어찌 보면 이 뜨개질은 불교에서 승려들이 수행하는 그것과도 비슷하더군요.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코를 끼우다 보면 주위에 만물이 일순간 고요해지고, 정적에 빠져듭니다.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혹은 떠들썩한 TV 소리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느 시점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겉으로만 봐서는 뜨개질의 속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 몸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참고 견뎌야만 온전히 뜨개질의 뜻을 헤아릴 수가 있죠. 그것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나를 단련시키는 일종의 수행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더디지만 조금씩 저는 뜨개질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처음의 조급함이 사라지고 잔잔한 평온이 찾아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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