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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번출구 Jul 22. 2019

난(蘭)

에세이 & 수필 & 사색


가느다란 '난' 잎은, 특정지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자라난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휘어져 있다. 같은 방향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곡선은 없다. 잎을 투과하지 못한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겹겹이 포개져 면을 이루는 윤곽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자라나는 것이다.


저 휘어짐은 중력을 견디지 못한 애달픔일까. 몇 세기를 거쳐 변형과 변이가 반복돼 만들어진 결과일까.


나는 생명이 지닌 목적성을 얘기할 때마다 사시사철 피고 지는 식물들을 떠올린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아는 저 요지부동의 올곧음. 이러쿵저러쿵 설왕설래하지 않는다. 한 곳만을 응시한 채 본인의 소임을 다해 뻗어가는 일이야말로 생명이 지닌 분명한 목적이라 여긴다. 그 자체가 생명의 원형이다.


휘어짐이 아름답다면 보나 마나 그 내면 또한 진실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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