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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번출구 Aug 14. 2019

쑥떡

수필 & 에세이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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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할머니가 쑥떡을 들고 오셨다. 며칠 전에 이사 왔단다. 쭈글쭈글한 손, 구부정한 허리,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성하지 않은 이를 들어내 보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봄에 직접 뜯은 쑥으로 떡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봄빛이 넘실대는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산기슭 어딘가에서 거친 바람을 건디며, 새벽 이슬을 먹고 자라난 쑥. 그 쑥을 할머니는 허리 굽혀 하나하나 정성 들여 뜯었을 것이고, 손마디는 쑥물로 얼룩졌을 것이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턱끝까지 흘러내렸을 것이고, 무릎에서는 연신 고통스럽다 아우성쳤을 것이다.  
 
그 마음. 그 정성. 그 수고로움이 파도가 되어 엄습한다. 나는 떡을 먹은 게 아니다. 할머니의 땀, 허리, 무릎, 손을 야금야금 베어 먹은 것이다. 할머니가 주신 쑥떡 위로 푸르른 봄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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