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번출구 Sep 03. 2019

버스 옆자리

에세이 & 수필 & 산문 & 사색

-


버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심 속을 가로지릅니다.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너무나 오래되어 잊힐법한 옛 가요가 흘러나오네요. 적막한 버스 안에 옛 가요가 이리저리 떠다니다 누군가의 귓등에 슬며시 내려앉습니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합니다. 버스는 복잡하고 지루한 이 길을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이 내달리겠죠.


버스의 옆자리는 참으로 기묘한 공간입니다. 옆자리가 비어있을 때는 어떤 사람이 앉을까 괜히 설레면서도 긴장되지만, 정작 누군가 옆에 앉게 된다면 은근히 신경 쓰이더군요. 옆사람의 어깨가 내 어깨와 부딪힐 때, 옆사람의 가방끈이 내 무릎 위에 얹힐 때, 내 외투 한쪽 끝이 옆사람의 엉덩이에 슬며시 짓눌릴 때도, 이 모든 게 용인되고 용서가 되는 옆자리.


오늘 제 옆 자리에는 긴 머리를 늘어트린 젊은 여인이 앉았습니다. 아름다운 미모 때문인지,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온 우주가 흔들리는 것 같더군요. 나는 멋쩍게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 상점 간판들만 쳐다보았습니다. 빙점을 통과하는 수증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처럼, 긴장된 마음이 빙점을 통과했던 것인지 심장이 딱딱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쑥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