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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번출구 Oct 01. 2021

고슴도치

수필 & 산문 & 에세이 &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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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당신의 등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실연이라고 했던가요. 당신의 입술 사이로 힘겹게 비집고 나온 차가운 그 두 음절이, 나의 명치께를 아리게 만듭니다.


행여나 울음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까 당신은 온몸으로 울음을 부정하려 하네요. 허나 실연에 서툰 당신의 어깨는 드문드문 떨려왔습니다. 그렇게 부정의 행위를 부정하려는 무엇에 당신은 속절없이 탄로 나는 사람이죠.


울음을 참아내려는 안간힘은, 끝끝내 발설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반영이었을까요. 당신의 등에서 가시들이 발설되어 돋아나기 시작하네요. 심해어의 그것과도 닮아있는 가시입니다. 가시가 서슬 퍼런 예리함을 앞세워 무차별적으로 자라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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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당신은 입버릇처럼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대해서 말을 했었죠. 


추운 겨울 고슴도치들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는다고요. 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은 나머지 서로의 가시에 푹푹 찔려 몇몇은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요. 그렇게 몇 번의 희생이 뒤따르고 나서야 비로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추운 겨울을 버텨낸다는... 너무 가까이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도 갈 수 없는 고슴도치의 딜레마.


당신은 예의 그 선한 눈을 치켜뜨고선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내 나를 밀쳐 냈습니다.


.

.


푸~욱 푸~욱 

당신의 등을 쓰다듬는 나의 손이 가시에 찔립니다. 소리없는 당신의 울음을 들어주는 사이, 가시들이 나의 손을 찔러 해하려 듭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당신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 어떤 말도 하지 않네요.


당신은 나를 떠났어도 정작 떠나보내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었을까요. 

눈이 옵니다. 

이제 당신의 등에서 손을 떼고, 우리 다시 또 고슴도치 처럼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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