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산문 & 에세이 &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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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가로등은 항상 세로로만 서 있다.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수직으로 뻗어 나가려던 가로등의 의지는 별안간 무언가에 턱 가로막히고 만 것이다. 가로등을 보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은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던 어느 노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중력을 박차 오르는 안간힘과 2차원을 뚫고 나오는 투지가 비로소 가로등을 만들어준다. 가로등이 말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들이 마찬가지로 구체화되지 못한 무형의 언어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행인들의 발에 채인다.
가로등에 아슬아슬 몸 붙이고 있는 임대문의 전단지. 전화번호 끝자리가 찢겨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집을 얻고자 하는 어떤 이의 집념이 전화번호를 완성시켜준다. 어떤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꼭 가로등 아래서만큼은 나뭇잎과 연인들의 발자국만 맴돈다.
그래,
그렇게 한곳에 오래도록 뿌리박으며 외로움과 그리움은 너 혼자 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