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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냉이 Oct 28. 2021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행복

독일 소도시에서 느끼는 천천히 살기

나는 지금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다. 처음엔 다들 왜 베를린, 쾰른, 함부르크 등 대도시를 두고 왜 시골(?)로 가냐고 물어봤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울이 너무 복잡해서"


서울에서 태어나 약 20년을 넘게 살다 보니까 작은 마을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비록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긴 하다. 그래도 너무 작은 동네라 스타벅스도 없고, 시내에 나가면 하루에 적어도 한 명은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다. 시내는 3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고, 기숙사에서 30분만 걸어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에 말이 살고 있다.


물론 인프라는 서울이 최고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정신없는 도시에서 벗어나서 자연이 가까운 작은 동네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 그렇게 교환학생 생활에 적응될 때쯤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나라는 모든 게 느리다. 물론 그 느린 게 한국에 비해 상대적인 거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나한텐 모든 게 속이 터질 만큼 느리다. 행정처리는 기본 2주는 걸린다. 2주면 빠른 편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해서 편지로 행정처리를 주로 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병원이든 외국인청이든 다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한다. 예약 과정도 기본 1~2주는 걸린다. 식당에 가면 벨을 눌러서 주문을 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웨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문을 해도 음식이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식사 후 계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가서 부르거나 손을 들지 않고 웨이터를 계속 쳐다보면서 내 쪽을 봐주길 기다려야만 한다. 인터넷 속도도 한국만 한 곳이 없다. 여기 오고 나서 카카오톡으로 동영상을 전송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인지 처음 알았다.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돼서 힘들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나니 나도 드디어 독일인의 피가 조금은 흐르는지 점차 적응이 되고 있다. 동시에 '천천히'에서 오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제목이 거창한 여러 에세이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소 겪어보니 멈추니까 보이는 것들이 꽤 있다.


한국인은 '빨리빨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잠시라도 휴식을 가지면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휴식조차 갖지 못하고 현생에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잠시라도 멈추면 내가 유용하지 않은 사람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들까 봐 그랬다. 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떻게든 내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대외활동을 끊이지 않고 했다. 그 와중에 시험이며 레포트며 학업은 학업대로 신경 쓰면서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이 모든 걸 동시에 해내면서도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길인지, 또래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는 건 아닌지 늘 마음 한편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이곳에 오니, 모든 게 다 멈춰버렸다. 마치 포상휴가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매일 가던 아르바이트를 가지 않아도 되고, 매일 하던 진로 고민은 잠시 접어두었다, 학생의 신분이어서 개강은 했지만, 한국에서 받던 학업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다. 불과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휴학 없이 칼 졸업, 칼 취준이 목표였다. 워낙 취업난이 심각해진 터라, 조금이라도 늦쳐지면 기회조차 오지 않을까 봐, 또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불안하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 오니까 모든 게 바뀌었다. 휴학을 하던 교환학생을 하던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주어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막연해 보일 수 있지만, 당장 6개월 뒤, 1년 뒤 내 모습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니까.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빨리 살다'라고 적힌 독일차 한 대를 봤다. 순간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그 차 때문이다. 독일 차에 한국말로 글귀가 적혀있는 건 정말 드문데 하필 그 문구가 '빨리 살다'라니. 꽤 충격이 컸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저런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사는 세상 속에 살고 익숙해지다 보니 내가 빨리 살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여기 오니까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과연 빨리 살아서 모든 걸 남들보다 빨리 이룬다고 해서 행복할까. 잘 모르겠다. 물론 느리게 산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차를 타고 지나갈 때보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갈 때 풍경을 더 잘 느낄 수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저 차 주인을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천천히 살다'라고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때로는 천천히도 괜찮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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