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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냉이 Aug 14. 2021

소울메이트, 이근화

이 세계가 좋아 골목에 서서 비를 맞고 있는 당신에게

소울메이트

                              이근화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단지 이 세계가 좋아

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고

비의 나쁜 기억으로

발이 퉁퉁 붇는다


외투를 입고 구두끈을 고쳐맨다

우리는 우리가 좋을 세계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


이근화,『우리들의 진화』, 문학과 지성사(2009)



나는 이 시가 좋다.

참 마음에 든다.

이유는 모른다.

아니 사실 안다.

때로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껴지는게 더 클 때가 있다.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수많은 시를 배우고 분석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시는 무수히 많았어도

평생 기억하고 싶었던 시는 처음이다.

이게 바로 그 시다.

이 시를 읽었을 때 가슴이 뛴다면

당신도 이 세계가 좋아 골목에서 비를 맞으며 무엇인가 느끼고 있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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