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는 하루
– 그물과 관계에 대하여
프롤로그
우리는 쉰다고 말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
“그냥 좀 쉬었어.”
하지만 정작 돌아보면,
그건 쉼이라기보단 _정지된 움직임_에 가까웠다.
몸은 멈췄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언가를 의식하고,
관계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그건 정말 쉰 걸까?
관계라는 백그라운드 앱
삽교호엔 자주 간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굳이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에 가는 곳이다.
오늘은 쉬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다시 그곳을 찾았다.
말을 줄이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갈대는 바람에 따라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 풍경에 맞춰 나도 좀 내려놓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벤치에 앉아 몸은 쉼의 자세를 취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쪽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말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관계’는 여전히 내 안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도
나는 표정을 조율했고,
너무 무뚝뚝하지 않게
거리와 말투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문장이 있다.
“쉬는 것 같았지만 쉬고 있지는 않았다.”
“쉬지 못하게 만드는 건 일이 아니라, 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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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가장 피로하게 만든다.
‘그냥 쉬자’고 해놓고도
‘괜찮다’는 척,
‘오늘은 묻지 말아줘’라는 눈빛,
그 모든 비언어가 말보다 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진짜 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잠시 내려오는 일이라는 걸,
나는 오늘에서야 조금 알게 됐다.
전환 – 바다로 이동하며
그래서 나는 오늘,
관계 대신 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물 하나를 만났다.
2부 – 그물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삽교호 바위 끝자락,
그물 하나가 길게 누워 있었다.
차갑고 축축한 몸으로
아무 말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물었다.
‘저 그물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어부의 손길일까.
지나가는 고기일까.
아니면,
바람을 쉬어가는 갈매기일까.
그물은 얽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순간이든 받아들일 자세를 한 채
거기 있었다.
몸은 쉬고 있어 보이는데,
그 안엔 묘한 긴장이 있었다.
언제든 무엇인가를 맞이할 준비 같은 것.
어쩌면 그것이 ‘그물다움’인지도 모른다.
그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받아냈다.
기다림은
가장 조용한 형태의 환대였다.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어떤 것도 억지로 잡지 않지만
다가오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느린 환대의 태도.
그건 다정하면서도 단단한 존재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조금 그물처럼 살고 싶어졌다.
에필로그 – 나를 사는 하루
오늘 나는
쉼과 기다림 사이에서
한 가지 문장을 얻었다.
오늘의 나는
기다림 쪽으로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완벽하게 쉬지는 못했지만,
왜 쉬지 못했는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나를 사는 하루다.
사고 질문 카드
“당신 안의 백그라운드 앱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켜져 있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