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는 하루
“끝나지 않은 상태도 하나의 진실이다.”
— 수전 손택
계속 진행 중인 자판
감기는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메신저 같다
그중 가장 정직한 기관은
눈이었다
눈은 일찌감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좀 자자.”
그 말을 들은 손은
망설였고
눈꺼풀은 무거웠고
자판은 매캐했는데
머리는 거듭 말했다
“그래도 써야지.
이 감정은
지금 아니면 못 쓰는 거니까.”
하루를 정리하긴커녕
하루에 정리당한 기분이었다
내가 하루를 쓴 게 아니라
하루가 나를 썼고
나는 그 원고의 말미에
작은 각주처럼
붙어 있었다.
그렇게
머리와 손이
밀어붙이는 사이
눈은
점점 충혈되어갔다
모든 장기들이
회의 중이었고
눈만은
침묵 속에서
자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 깜빡임이
내 안의 불안처럼
느껴졌다
무언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무언가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신호처럼
자판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그 장면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처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이
‘나를 사는 하루’라면
오늘의 나는
쓰여진 사람이 아니라
써지는 사람이었다.
밤 12시 21분을 넘긴 지금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진행 중인 자판 위에서
조용히 회의 중이다.
아마도 오늘은
이렇게
글이 끝나지 않은 채
끝나는 하루다.
(매일 읽는 긍정 한 줄 365)
“끝내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도 있다.”
Q1
오늘의 나는
끝내지 못한 걸
얼마나 허락했을까?
Q2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하루는 어떻게 달라질까?
Q3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계속 진행 중’인 것은
무엇일까?
다음 글도
이 흐름으로 가면 좋아.
오늘은 아주 정확한 자리에 서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