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생기는 여운에 곧장 감상을 끄적이게 된다.
말을 덧없게 여긴 싯다르타지만, 결국 이 이야기도 말로 전해지는 이 아이러니함. 이런 모순마저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싯다르타는 아버지 바라문과 현자 무리 속에서 사상을 배우고 수행하고 침잠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싯다르타는 총명하고 온몸에서 빛이 나는 눈부신 사람이었지만, 막상 싯다르타 자신의 마음속엔 해결되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다. 그는 결국 현재 자신을 이루는 고향을 벗어나 떠돌아다니는 사문의 행렬에 합류하게 된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바라문은 반대하지만 밤새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싯다르타의 의지를 보며 결국 싯다르타의 뜻대로 하도록 한다. 싯다르타는 계속 나아간다. 사문으로 몇 년을 떠돌다 항간에 가득한 소문의 주인공. 깨달음을 얻은 부처 고타마를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들어보기도 하지만 싯다르타는 더 이상 가르침으로 해결될 수 없는,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고 속세로 들어간다. 속세로 들어가 카말라, 카와스와미를 만나 사랑과 장사를 배워 세속의 한가운데서 그곳 사람들을 어린아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그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안에서도 역시 배움이 있었지만 돈을 벌고 노름으로 돈을 탕진하는 반복된 일상 속에 싯다르타는 어느새 공허와 허무함에 휩싸이게 되고 어느 날 망고나무 아래서 자기 자신을 깊이 명상하며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나선다. 그 사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러다 강물을 만나는데 죽고 싶다는 절망감이 들어 강물에 빠지려던 순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옴"을 느끼고 그것을 내뱉게 된다. 그 후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자고 일어난 후 싯다르타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옴.
싯다르타는 다시금 몸 전체에 흐르는 생명력을 느끼며 나아간다. 강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는데 전에 세속으로 들어갔을 때 지나갔어야 하는 그 강, 그 당시 자신을 재워주고 뱃삯을 받지 않고 태워주었던, 우애를 느꼈던 뱃사공에게로 가게 된다. 그 뱃사공을 만나 함께 지내며 강으로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뱃사공의 이름은 바주데바인데 그는 싯다르타의 벅차 한없이 늘어놓는 모든 이야기를 온몸을 열어 경청한다. 그 경처에 감화된 싯다르타는 그와 함께 지내며 그의 스승인 강의 가르침을 받으며 바주데바와 닮아 간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들을 만나 같이 살게 되는데, 그토록 평온했던 인생에 아들이 들어옴으로 그의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결국 아들은 난동 부리다가 자기 삶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싯다르타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가 바주데바의 도움으로 큰 상처가 있지만 가까스로 뱃사공의 삶을 이어나간다. 바주데바도 숲으로 떠나고 혼자 남은 싯다르타.
그에겐 고빈다라는 친구가 있다. 바라문 시절부터 함께 수행하고 침잠하며 모든 것을 같이 하고 싯다르타를 존경하던 친구인데, 그와는 사문생활도 함께 하였지만 고타마를 만난 후 그 둘의 행로는 갈라졌다.
고빈다는 고타마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고 싯다르타는 자기만의 길을 가는데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깊이 잠들었을 때 그 곁을 지켜주었고, 훗날 현인과 같은 뱃사공이 있다는 이야기에 싯다르타인 줄 모르고 가르침을 얻으려 뱃사공을 찾아간다. 그렇게 싯다르타와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장면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이다.
고타마의 가르침을 따라 거의 평생을 살고 늙었음에도 여전히 구도하는 그 고빈다. 그는 삶에 대한, 어떤 경지에 대한 호기심이 정말 대단하다. 지칠 법도 한데 지치지 않고 계속하여 질문하는 고빈다. 그에게 싯다르타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고빈다는 자꾸 농담으로 치부한다. 끝내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싯다르타의 경험을 잠깐 체험하게 되는 고빈다는 결국 끊임없이 질문하고 구도함으로 그 답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싯다르타는 말의 가변성에 회의감을 가지고 사물, 보이는 것 행동으로 지혜를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고 했지만 싯다르타는 경험과 사물로, 고빈다는 말의 가르침과 질문함으로 결국엔 같은 것을 보게 된 건 아닐까. 모든 것이 동시에 있으며 양면성이 있기에 사랑스럽고 경외할 만한 세상인 것이. 강이 돌멩이가 새가 어리 석어보이는 저 사람이 우리의 스승인 것이다.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깎여 나가는 것만 같고, 정체되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을 때.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살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 때. 인간이라면 생의 어떤 시기에 겪을만한 생각과 질문.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올 때, 우리는 그 질문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과를 처리해 내느라 질문을 뒷전으로 두고 질문은 부식되어 버린다. 그 질문이 각자의 고유한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매일을 더 잘 살아내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해 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 질문을 놓치고 산다. 싯다르타는 나를 그 질문 앞에 서게 한다. 서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고. 그렇게 고민하고 또 깨달으며 세상 곳곳의 것을 스승 삼아 자신만의 고유한 길로 초대한다.
한 아리따운 기생이 오랫동안 나의 스승이었으며, 한 부유한 상인이 나의 스승이었으며, 몇몇 주사위 노름꾼들도 나의 스승이었네. 언젠가 한 번은 떠돌아다니는 불제자 한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된 적도 있었지.
... 나는 여기 이 강으로부터, 그리고 내가 뱃사공 일을 하기 전에 이 일을 맡아하고 있었던 나의 전임자 바주데바한테서 가장 많이 배웠다네.
이 세상을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제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