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매일과 영원'시리즈
주인공 오한기는 작가다. 오한기 작가의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차례의 첫 제목처럼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다. 그는 진진과 결혼했고 아이 주동과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일상은 주동 등원으로 시작해 작업실에서 쓰는 일을 하고 밥 먹고 또 일 하고 주동 하원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는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던 중 작업실 화이트보드에 의문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 작업실을 공유하는 다른 작가는 해외에 있고 오한기는 의문이 들어 아내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는 눈치인데, 작가는 화이트보드에 답변을 남기고 여러 추측도 해보지만 일상의 이런저런 일에 바빠 의문의 메시지를 지나쳐 버린다.
생각해 보면 자다가 들리는 의문의 소리, 살면서 겪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걸 압도하고야 마는 매일의 고단함과 가끔 느끼는 즐거움은 현실을 사는 우리네 인생 그 자체다. 아이의 아픔, 작업실 계약 만료, 전세사기, 집주인과의 소통, 부모님의 지병과 병간호까지 낯선 건 하나도 없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아마도) 미래의 침입자는 작가에게 무슨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걸까. 왜 불쑥 찾아들어 기분을 잡치게 할까.
이 이야기들이 더욱 와닿는 이유는, 에세이에 등장하는 역명과 지역 이름들이 낯익다는 데 있다. 작업실로 가는 길, 본가로 가는 길,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 마치 내 눈앞에 펼쳐지듯, 내가 산책하듯 이어진다. 그렇게 오한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짜증 나는 상사와 MBTI에 집착하는 친구, 심심하다며 시간을 뺏는 아이 주동, 그 옆에서 묵묵히 그를 지지하는 아내 진진까지,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오한기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납득’이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주거를 위협하는 전세 사기 속에서 계약 만료 때마다 불안해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돈이 없어 인생의 선택지가 몇 개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막막함을 그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든 납득하며 살아간다. 그저 살아가지만, 살다 보면 턱턱 걸리는 방지턱들을 스스로 설득하며 넘어가는 삶.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남길 것이다. 흔히 말하는 ‘현대인’이라는 기준도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잣대일지 모른다.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덤벼보는 나 역시 여전히 불안하고 서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갑자기 나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삶도 이렇게 지치고 엉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 확인했을 뿐이다. 그 사실이 위로라면 위로고, 더 큰 허탈감이라면 허탈감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들 어떻게든 버티며 살고, 그 버티는 삶 속에서 별다른 깨달음도, 새로움도 없이 다음 날을 맞는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비슷하게 지칠 것이고, 별 수 없이 또 살아낼 것이다.
기꺼이? 아니다. 솔직히, 기꺼이까지는 영 못 되겠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는 게 문제다.
아, 그리고 기억에 본인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가져다 쓴 회사 길버트로 찾아가 오한기역 오디션을 보는데 떨어졌다 ㅋㅋㅋ 이런 상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오한기역에 오한기가 떨어지다니. 내 역할에 내가 맞지 않는다. 나처럼 사는 게 뭔데. ㅋㅋㅋㅋ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