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은 결함을 동반하기에
예소연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을 읽고
마찰이 잦은 부분에 보풀이 일어나는 것처럼 누군가와 접촉하고 관계 맺을 때면 무언가 변화하고 창조된다. 보풀이 생기든, 사랑이 피어오르든 어떤 모양일지 모르지만, 분명 변화가 생긴다.
친구, 엄마, 아빠, 할머니, 부동산중개인, 온라인친구, 펜션주인, 애인, 고모, 동창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와 접촉하고 관계 맺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부정하고 싶어도 인간은 누군가의 자궁에서 그의 영양분에 기생함이 생의 시작이니, 그보다 더 전에 누군가의 강렬한 접촉으로 개인의 존재가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태어난 개인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내가 나를 채 인식하기도 전에 남을 먼저 보게 된다. 그 사실은 내가 나를 인식하는 데 속수무책으로 영향을 행사한다.
아이스크림 한 입만 달라하는 모르는 언니로 인해, 친구 아빠의 자살 이야기를 귓전에 쏘아대는 같은 반 친구로 인해, 그저 사랑했을 뿐인데 내가 아닌 다른 인생을 선택한 사람으로 인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관계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관계도 있다. 내가 선택했다고 해서 그 관계의 결함이 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깨끗한 관계는 없다. 어떤 부스러기라도 남기 마련. 나의 선택으로 인한 부스럼은 더 가렵고 아프기도 하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이상 마음과 몸은 움직이고, 깨지고 변화하기 마련.
그런 나를 못 견디는 순간에도 견뎌야 한다.
견디는 삶, 즉 정체된 삶 같지만 우린 분명 나아간다. 죽음으로, 더 나은 생으로. 더 나은 생의 장면을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침범하고, 찢어져야 할 때가 온다. 그건 내가 아닌 타인을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흔히 사랑은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어떤 사랑은 결함을 동반하고, 찢기고 다시 태어남으로 진정 나다워지는 관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석주와 맹지, 맹지와 석주는 그렇게 함께 지내며 함께 걷고 함께 게임하고 함께 철봉에 매달린다.
함께 살며 연을 맺는 우리. 그 무게로 늙어간다는 것은, 늙어감은 곧 씨줄과 날줄로 엮인 거대한 관계망에 눌리는 것과 같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 연으로, 연결됨으로 생명의 에너지를 주고받았다면 그것만으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미래에 속한 미래의 내 지금을 잘 살려면 지금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자주 기억하고, 나의 오늘이 미래의 대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다짐해 본다. 특히 무언가 지망하는 지망생들에게, 나에게, 어쩌면 죽음을 대비하는 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