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xxx만 원입니다."
먼저 호명된 입찰자의 입찰가가 나의 입찰가보다 낮았다.
그렇다. 낙찰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드디어 첫 낙찰이구나.'
이후 내가 적어 낸 입찰가가 불렸다.
"최고가매수인은 000에서 오신 000입니다."
경쟁자(?)와 나와의 입찰가 차이는 약 400만 원에 불과했다.
낙찰을 기대했음에도, 실제 낙찰이 되고 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매번 패찰자 창구에서 보증금을 반환받던 내가 낙찰자 창구로 가서 보증금 대신 낙찰영수증을 받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한편으론 예정 입찰가보다 60만 원 더 높여 쓴 것에 대해 아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60만 원 더 높여 적었을지라도 최저 입찰가와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낙찰받은 이 빌라는 애초에 감정가 뻥튀기가 심하게 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2번이나 유찰되어 가격이 매력적이었고, 준신축이라 손 볼 곳도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대로만 흘러간다면, 세전(세금 내기 전) 양도차익은 최소 5000~60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세금과 각종 비용을 제하더라도, 웬만한 직장인 연봉을 몇 개월 만에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태연한 척 법정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일명 '대출 이모님'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전화번호, 매매사업자 여부, 보유 주택 수, 기대출 여부 등을 물어보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연예인이 공항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이면 이런 기분일까. 마치 스타가 된 것 같았다.
'입찰 전에는 그렇게 무미건조했었는데, 이렇게 바뀐다고?' 낙찰자의 특권이었다.
명함을 다 받고 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법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낙찰 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법원 종합민원실로 가서 낙찰받은 물건의 사건 열람부터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제 나는 낙찰자로서 해당 물건의 이해관계인이 되었기 때문에 관련 문서를 열람하는 데 제한이 없었다. 사건 열람을 통해 해당 물건의 역사(?)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확인했었던 등기부등본은 물론 임대차 계약서 등 각종 서류들을 날 것 그대로 볼 수 있다.
혹시나 사건열람을 통해 내가 몰랐던 권리상의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매각불허가 신청으로 낙찰을 취소하고 입찰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매각불허가는 통상 매각기일로부터 일주일 이내 신청해야 한다.
사건열람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이해관계자들의 연락처 확보다. 낙찰받은 물건의 소유자나 임차인 등의 번호를 사건 열람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이에 나도 사건열람을 하기 위해 종합민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사건열람을 하기 위해선 법원 내 은행에서 수입인지를 구매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경매로 낙찰받은 집 사건열람 좀 하려고 왔는데요~."
"네. 사건 번호 불러주세요."
"2024 타경 XXXXX입니다."
"어? 이거 조금 전에 낙찰받으신 거네요?"
"네 맞아요."
"그러면 이건 지금 사건열람 못해요. 최소 하루 이틀정도는 지나고 다시 와보세요."
법원마다 사건열람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다르다. 그날 몇 시간 뒤 사건열람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며칠 뒤 열람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내가 갔던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후자였다.
어쩔 수 없이 사건열람은 뒤로 미뤄졌다. 이제 나에게 놓인 선택지는 두 개였다. 우리 집으로 가거나, 낙찰받은 집으로 가거나.
하지만 사건열람 없이 낙찰받은 집부터 가기엔 뭔가 준비가 덜 된 느낌이었다.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세대열람서 등 서류상으로는 해당 집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와있었기 때문이다.
첫 낙찰로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이날만큼은 그냥 집에 가서 낙찰의 기쁨을 누리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집으로 향했고, 다음날 법원에 다시 방문해 사건을 열람했다.
민원실 안에 있는 컴퓨터로 직접 관련 서류들을 살펴봤다.
수십 장의 서류들 중 임대차계약서에서 소유자의 번호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필요한 부분은 금액을 지불하고 복사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소유자에게 문자를 남겼다. 빈 집이 맞는지, 비밀 번호는 무엇인지 물어봤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없어 전화를 걸었고, 들려오는 음성은 '없는 번호'.
부랴부랴 낙찰받은 집에 찾아가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계량기는 돌아가고 있었다. 우편함도 깨끗해 사람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류에 나온 것처럼 공식적으로는 비어있어야 하는 집이었다. 즉, 빈 집일 확률도 있었다.
일단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 번호를 남긴 쪽지를 현관문 앞에 부착했다.
'낙찰자입니다. 여쭤 볼 것이 있으니 이 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후 해당 빌라 업체로 연락을 해봤다.
"안녕하세요. 000, 000호 낙찰자인데요~ 여기에 누가 살고 있나요?"
"낙찰자 영수증 보내주시면, 관련해서 확인해 볼게요."
"아, 네 잠시만요~"
낙찰자 영수증을 확인시켜 주고 다시 통화를 했다.
"음, 거기 외국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오네요?"
"네? 외국인이요?"
"네. 3개월 전쯤 새로 들어왔는데, 그 이후로 관리비도 계속 밀리고 있어요."
'누가 살고 있다고? 그것도 외국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