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집에 정체 모를 '누군가' 살고 있다.

by 경포티

내가 낙찰받은 집은 일명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대항력 포기 물건'이다.


채무자 겸 소유자 대신 임차인의 보증금을 지급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임차인의 대항력(점유 권리)을 포기하고 경매로 해당 집을 내놓은 것. 한 마디로 이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야 정상인 것이다.


서류상으로도 깔끔한 집이었다. 전입세대 열람원, 외국인 체류확인서 등에 아무것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게 연락을 해 봤다.


"안녕하세요. 0000 낙찰자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서류상으로는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하는데,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네. 그럴 가능성도 있어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니?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럼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책임지고 점유자를 내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저희는 이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신 지급한 것뿐이에요. 해당 집을 관리할 의무는 없습니다. 낙찰자가 알아서 해결하셔야 해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이 집 비밀번호도 갖고 있잖아요?"

"비밀번호는 최종적으로 경매 잔금까지 완납하면 알려드릴게요. 그런데 이 비밀번호 또한 전 임차인이 나가면서 저희에게 제공해 준 것일 뿐이에요. 지금 또 다른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비밀번호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일단 전화를 끊고 '명도(점유를 넘겨받는 절차)' 책임에 대해 더 알아봤다.


이렇다 할 확실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 다만 HUG 대항력 포기 물건일지라도 낙찰자가 명도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도 자신들이 경매를 신청한 후 종종 '셀프 낙찰'을 받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책임지고 명도를 진행한다.


책임 소재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시 빌라 관리업체에 전화를 해 정체불명의 외국인 거주자의 연락처를 어찌어찌 알아냈다.


하지만 수 차례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 전화는 수신이 거부되어 있는 상태였으며, 문자를 보내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낙찰받은 집으로 다시 향했다.


도착했는데, 웬걸?


현관문에 부착해 뒀던 쪽지가 사라졌다.


누군가 살고 있는 것이다.


거주자 여부를 묻기 위해 이웃들 초인종을 눌러봤으나 다들 외출을 한 것 같았다.


낮이고 밤이고 재차 방문했다. 정체불명의 거주자는 만날 수 없었다.


다시 빌라 관리 업체에 전화했다. 현재 정체불명의 거주자에 대해 물어볼 곳은 여기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거주자 전에 누가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분들은 개인정보 때문에 알려 드릴 수 없어요. 낙찰자라고 하셔서 현재 거주자는 알려드린 거예요."

"그럼 XXX(소유자)씨 또는 XXX(당시 임차인)씨가 맞는지만 확인해 주세요."

"둘 다 아닙니다."

"그럼 현재 거주자가 이 빌라에 살고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입주확인서를 받는데, 연락처만 겨우 받았어요. 외국인이라 소통이 너무 어려웠어요. 아마 그전 임차인과 계약했던 부동산에서 현재 거주자도 계약한 것으로 보여요. 해당 부동산에 연락해 보고 연락처 공개가 가능하다고 하면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부동산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XXX 낙찰자인데요."

"아~ 네 연락받았어요."

"현재 거주자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보증금 없이 단기 월세로 계약을 했어요."

"이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거는 알고 계약한 거죠?"

"네,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낙찰된 거 제가 확인해서 거주자한테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네요."

"국적이 어떻게 되나요?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들어서요."

"국적은 모르겠는데, 어느 정도 한국말은 하신 것으로 기억해요."

"네, 일단 연락되면 알려주세요."


'아니, 경매로 나온 집을 계약해 준 부동산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뭔가 께름칙 해 공인중개사인 지인에게 해당 사례를 물어봤고,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런 사례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명 '깔세'.


깔세란 임대할 때 임대 기간만큼의 금액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월세를 의미한다. 대부분 보증금이 없거나 적고 월세비가 저렴하다. 특히 깔세는 경매로 나온 집에 자주 등장한다. 경매로 집이 나왔더라도, 아직 남아 있는 소유자의 권리를 이용해 단기로 또 다른 임차인을 들이는 것이다.


문제는 불법 점유자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내쫓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점유자의 권리가 보장되면서 명도소송이나, 강제집행을 통해서만 점유자를 내보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시간과 비용이 드는 강제집행을 진행하기 전에 점유자와 적당히 협의를 해 내보내는 편을 택한다. 그게 비록 불법 점유자일지라도 말이다.


내 집에 나도 모르는 불법 점유자가 있는데, 마음대로 내쫓지 못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컨설팅 업체를 표방하는 브로커들이 이를 악용해 깔세를 종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아직까지는 내 소유의 집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낙찰자일 뿐이었다. 조금 더 당당히 소유권을 내세우기 위해선 하루빨리 경매 잔금을 납부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야 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나면 이때부터 강제집행 절차도 진행시킬 수 있게 된다.

이에 잔금 납부를 위한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일명 '9.7 부동산대책'.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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