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 지금 만나

by 경포티

"오늘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낙찰받은 집의 거주자라며 나에게 연락한 그녀는 어눌한 말투로 이 같이 말했다. 앞서 빌라 관리업체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한국말이 서투른 듯했다.


"아? 오늘이요? 제가 이 집으로 가도 되죠?"

"네네."


아직 나는 제대로 낙찰받은 집 내부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해당 집 안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단 집 내부 상태를 확인해야 다음 스텝에 대한 대략적인 견적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향후 명도합의가 잘 되지 않을 시 점유자가 집을 훼손시킬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행여나 점유자가 집을 훼손시킬 경우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라도 미리 집 상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점유자 역시 집 안에서 만나길 원해 다행이었다.


"그럼 몇 시에 볼까요?"

"4시까지 집에 있을 거예요."

"그럼 4시까지 가면 될까요?"

"네."

"아 아니구나. 4시에 외출하실 거면 그전에 만나야 되는 건가요?"

"네."

"그럼 몇 시가 제일 편하세요?"

"4시까지 집에 있을 거예요."

"..."


대화가 매끄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럼 2시까지 갈게요. 가서 연락드릴게요."

"네."


일단 나는 다른 어떤 일정보다도 점유자를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이 아니면 점유자와 연락이 또 닿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낙찰받은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재차 초인종을 눌렀다. 집에 누가 있냐고 문도 두드려봤으나, 묵묵부답.


'하 진짜, 이건 또 뭐야.'


아까 연락이 왔었던 점유자 핸드폰 번호로 수차례 연락했다.


하지만 수신불가 음성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올 뿐이었다.


차 안에서 20분가량 기다렸다.


'헛 탕 친 거 아니야? 아니면 어디선가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나?'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렸다.


점유자다.


"여보세요? 아까부터 집 앞에 도착했는데, 어디 나가신 거예요?"

"씻고 있었어요."


뭔가 허무하면서도, 일단은 안도했다.


"아 네. 그럼 다시 올라갈게요. 문 열어 주세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다시 점유자의 벨을 눌렀다.


드디어 문이 열렸고, 젊은 동양 여자가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인상은 생각보다 좋았다. 의도적으로 이사비를 받아내려 작정한 표독스러운 불법점유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순 없는 법.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혹시 집 안에 또 다른 사람은 없는지 빠르게 스캔했다.


"드디어 만나 뵙게 되네요. 혼자 사시나요?"

"친구랑 같이 살고 있어요."


집 상태는 양호했다. 딱히 손 볼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부동산에 내놔도 손색이 없었다. 공을 좀 더 들인다면 도배와 장판정도만 교체해도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신 거예요?"


나의 물음에 점유자는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 집의 낙찰자예요."

"낙찰자?"

"네, 낙찰자. 이 집이 경매로 나온 것은 알고 계시죠?"

"아니요. 경매? 그게 뭐죠?"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나?.'


"아 이 집 소유자가 빚을 못 갚아서 경매로 나왔고, 제가 이 집을 낙찰받았어요. 음 그러니까 이제 곧 제가 이 집주인이 되는 거예요."

"아? 네네."

"네. 그래서 이제 이 집을 비워주셔야 하거든요."


"네에에???????????????????????"


너무나도 놀란 표정이었다.


속은 모르겠으나, 연기는 아닌 것 같았다. 연기였다면 정말 블록버스터급이었다.


"아 모르셨어요? 이 집은 경매로 나왔기 때문에 낙찰되면 이사를 가셔야 하는 걸로 알고 계약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럼 어떤 식으로 계약을 한 거예요?"

"같이 사는 친구의 언니를 통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그 언니라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니, 3개월 전 이 집에 입주자로 등록되어 있었던 그 외국인이었다.


연락이 안 되던 그 언니라는 외국인이 이들에게 집을 넘기고(?) 잠수를 탔던 것. 아마 월세는 이 언니라는 사람에게 보내고 있는 듯했는데,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실여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 언니라는 사람이 이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저희가 언제까지 이사해야 하는 거예요?"

"원래 이달까지 나가주셨으면 했는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그래서 이사 날짜를 협의하려고 그동안 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던 거거든요. 일단 시간을 더 드릴게요. 갑자기 나가실 순 없으니까요. 대신 최대한 빨리 준비 좀 해주세요. 친구와도 상의해 보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월세를 낼 테니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될까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월세를 나에게 지급하고 계속 살기를 원하는 것을 보니, 이 집이 살기에 그럭저럭 괜찮은가 보다 짐작했다. 하지만 나는 단기매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적 사항을 물어봤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XXX요."

"아 여기에다가 좀 적어주시겠어요? 어느 나라사람이세요?"

"네. 몽골이요."

"아 몽골분이시구나~ 친구는 어디 갔어요?"

"수업 갔어요."

"대학생이세요?"

"네. 맞아요."

"친구분 이름과 핸드폰 번호도 좀 부탁드릴게요."


마치 내가 경찰이 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명도가 수월히 진행되고 있다한들, 인도명령 및 강제집행 절차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점유자의 인적사항은 되도록 많이 알고 있는 게 좋다.


"집 좀 한 번 둘러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집 내부 상태를 제대로 체크했다는 걸 점유자에게도 인지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게 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마냥 순박해 보이는 학생들이라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그 속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으시죠?"

"네. 없어요.


벌써부터 집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집주인이라기보다는 낙찰자였다. 즉, 앞으로 집주인이 될 사람.


하지만 그렇다고 낙찰자와 집주인의 차이를 점유자들에게 일일이 상세하게 인지시키기는 어려웠고, 그럴 필요도 현재로선 없었다.


"일단 가볼게요. 다시 또 연락해요. 친구분이랑 상의해보고 이사 날짜 정해지면 연락 주세요."


서로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명도도 별 것 없는데? 괜히 쫄았네. 뭐 운이 좋긴 했지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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