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자료를 제출해 주세요."
셀프 등기를 마치고 며칠이 지난 후 법원에서 연락이 왔다. 셀프 등기를 한 날, 함께 진행을 했던 '인도명령' 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점유자들이 이사를 가지 않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인도명령을 신청했는데, 해당 피신청인들의 신원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추가 자료 없이는 인도명령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게 법원 경매계의 판단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피신청인으로 적어 낸 이름이 외국인 이름이다 보니 경매계에서도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도명령 신청서에 적어주신 점유자에 대한 내용이 불분명해요. 이 이름이 맞나요?"
"제가 알아낸 바로는 그래요. 하지만 점유자들의 신분증이나 개인정보가 담긴 상세한 서류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니까 실명인지는 알 수가 없죠."
"그럼 인도명령을 진행할 수 없어요. 만약 막상 강제집행까지 갔는데, 점유자들이 신청서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할 경우 소송까지 갈 여지가 있거든요. 그럼 강제집행을 중단해야 하고 또다시 긴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사는지 그들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내야죠. 이건 낙찰자가 해결해할 문제예요. 일단 인도명령 신청 건에 대해선 보정명령을 내릴 테니, 소명자료 준비해서 제출하세요."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통상 이럴 경우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해당 법원 직원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보다는 신경질적인 답변으로 대신했다. "법원은 자문을 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돈을 주고 따로 법률 상담을 받으세요."
물론 경매계 입장도 이해가 갔다.
일일이 민원인을 상대하기에 지쳤을 수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매계의 말처럼 여차저차 강제집행을 하더라도, 점유자들이 피신청 이름과 다르다며 딴지를 걸 여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점유자들이 아무리 협조적일지라도, 그들의 실명 등 개인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이나 관련 서류들을 낙찰자가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실상 그럴 권한도 낙찰자에겐 없었다.
아울러 세대열람서, 외국인체류확인서 등 공식적인 부동산 서류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기에 보다 개인적인 소명자료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인도명령을 철회하거나, 점유자들을 믿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만도 없었다.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더 조사해 봤다.
통상 이런 상황에서는 경매로 나왔을 당시의 해당 소유자(채무자) 이름으로 인도명령을 신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실제 강제집행 시 점유자가 다를 경우 그 자리에서 법원을 통해 점유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그 정보를 기반으로 또다시 처음부터 인도명령 및 강제집행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명도까지 시간이 너무나도 지체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낙찰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곧 생명이다. 비록 나는 대출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자에 대한 부담은 적었지만, 하루빨리 명도를 마치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입장은 여느 낙찰자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기로 했다.
일단 나 같은 경우에는 낙찰받은 집에 전 소유자(채무자)가 살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에 굳이 전 소유자의 이름으로 인도명령을 신청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이름이 가명일지라도 기존처럼 내가 알아낸 외국인 점유자의 이름으로 인도명령을 신청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법원의 관문을 넘어서야 했다. 앞서 법원이 요구했던 합당한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인도명령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시 경매계에 연락했다. 보정명령은 어떤 수준의 자료까지 인용이 되는지 보다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얼마 전 보정명령이 내려진 것과 관련해서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더니, 해당 경매계 직원은 서류 제출을 촉구했다.
"꼭 공신력 있는 서류가 아니어도 되니까요. 나름의 소명을 할 자료를 어떻게 해서든 빨리 제출을 하세요. 아니면 또 한 달이 흘러간다니까요?"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공신력 있는 서류'가 아니어도 된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해당 점유자의 이름을 알아낸 경위에 대해 A4용지에 작성했다. 해당 빌라 관리업체와 나눈 대화 내역은 물론, 내가 직접 그 집에 방문해 점유자와 대화를 나눈 상황들을 정리해 '인도명령보정서'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을 했다.
다행히 법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인 듯했다. 대략 열흘정도가 지난 후 인도명령이 정상적으로 접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명령을 신청하는 것에 애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적지 않은 당황을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일단 인도명령 접수는 이렇게 무사히 마쳤으니 한시름 놓았다.
이와는 별개로, 최대한 강제집행 전까지 명도를 완료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점유자들은 나와의 만남 이후에도 먼저 따로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나의 연락을 피하지도 않았다.
다만 구체적인 이사 계획은 계속 회피했다.
일각에서는 소정의 이사비로 협상하고 하루빨리 내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점유자들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임차인들이 아니었을뿐더러, 현재는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라 오히려 피해를 보는 입장은 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상대방이 금전적인 측면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이사비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관리비도 3달째 밀려있는 상황이었다.
대신 서류상으로 조금 더 확실한 기록을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내용증명'.
과연 효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