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이란 어떠한 내용에 대해 서면으로 증거를 남기는 특수우편제도를 말한다.
이는 주로 채무 관계나 권리 등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할 때 활용한다. 우체국은 이와 관련한 문서 발송 날짜 등을 공적으로 증명한다.
그렇다고 내용증명이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송 시 증거 등으로 쓰일 수 있고, 수취인을 압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로 부동산 경매에서 소유자가 점유자를 대상으로 활용하는 내용증명은 후자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압박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용증명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문장을 잔뜩 써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용증명은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 기반으로 작성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처한 상황과 향후 진행할 사항 등을 상대방에게 활자로 인지시키는 것이다. 말로 설명했던 것을 그대로 문서로 남긴다고 보면 된다.
다만 점유자와 명도합의가 잘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라고 미리 언질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생각보다 글의 힘은 대단하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욱 강하게 각인되는 법이다.
이에 나 역시 점유자들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내기로 했다.
단지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형식적인 절차였다.
참고로 내가 글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해 종종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이를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혹시 모를 상황'으로 인해 낙찰자의 수익이 손해로 바뀔 수도 있다. 낙찰자는 감정에 앞서기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게 회유가 됐던 압박이 됐던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아무튼, 내용증명을 보내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법무사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우체국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직접 우체국 홈페이지를 통해 보내기로 했다. 비용은 5000원~7000원 수준이었다.
작성매뉴얼은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줄줄이 나온다.
여기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단 우체국 홈페이지로 가서 회원가입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이후 '우편'->'내용증명'->'보내는/받는 분'->'내용증명서' 순으로 항목을 클릭하면 내용증명을 작성할 수 있는 화면이 나온다. 물론 발신인과 수신인에 대한 이름, 주소 등의 정보도 필요하다.
내용증명의 어조 역시 자신이 정하면 된다. 강한 내용을 담을 수도 있고 조금 더 부드러운 내용으로 작성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그저 상황에 따라 알맞게 선택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AI플랫폼인 'ChatGPT'와 여러 경매 도서 등을 참고해 썼다. 딱히 거창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 나는 '낙찰을 받고 잔금을 납부함으로써 2025년 0월 0일에 소유권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내용증명을 시작했다.
이후 퇴거를 요구하는 '명도 기한'을 명시했고, 기한 내 인도가 되지 않을 경우 '명도소송 및 강제집행'을 통한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때 발생하는 '소송비용 및 집행비용', '기타 손해', '무상으로 사용한 월 사용료' 등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는 그저 내가 아무 말이나 막 갖다 붙인 것이 아니다. 실제 법적으로도 적용 가능한 항목들을 기재했다.
그런데 문제는 점유자들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럴싸한 내용을 담은 우편물을 보내려 해도 점유자들에게 닿지 않았던 것. 내용증명은 등기우편으로 발송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체국에선 점유자들에게 몇 차례 방문했으나, 폐문부재로 내용증명을 전달하는 데에는 매번 실패했다.
그러면 해당 내용증명은 우체국에서 보관하게 된다. 이는 여느 등기물처럼 수신인이 직접 우체국을 방문해 수령해 가야 한다.
하지만 점유자들은 우체국에 직접 가서 우편물을 수령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단지 '집에 없을 때 우체국에서 방문했었나 보다'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던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용증명에 담았던 똑같은 내용을 한 부 더 작성해 점유자들의 우편함에 넣었다.
우편함은 점유자들이 언제든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전에 등기로 기록은 남겨놨으니, 추후 법적 증거로 활용해야 할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며칠 뒤 다시 낙찰받은 집에 방문했을 때, 해당 우편함은 비어 있었다. 그렇다. 점유자들이 우편함을 확인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점유자들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리고 점유자들은 전 보다 확실히 협조적으로 이사날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효과였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의 반전이 마냥 내용증명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점유자들의 태도가 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점유자들은 이사를 갔다.
낙찰받은 지 한 달, 잔금납부 2주 만이었다. 이 정도면 명도기간이 상당히 짧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명도 과정에서 점유자들의 저항도 없었다. 낙찰받고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만 빼면, 크게 불미스러운 일 없이 명도가 마무리된 셈이다.
더욱 놀랐던 것은, 그동안 밀려 있었던 관리비와 공과금까지 모두 점유자들이 정산을 하고 나갔다는 점이다.
이들이 관리비와 공과금을 정산하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한편으로는 이렇게 정산까지 마무리해 주고 나간 점유자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드디어 비밀번호를 인도받았고, 낙찰받은 집에 다시 방문했다.
두근두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집은 깨끗이 비어 있었다. 당초 옵션으로 딸려 있었던 몇몇의 가전제품들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사 직후라 집안은 조금 더럽긴 했지만,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 정도면 예전에 방문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입주청소만 끝내면 바로 부동산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부터 부랴부랴 바꿨다. 그리고 서비스 견적 비교 플랫폼을 통해 입주청소를 알아봤다.
이제야 나의 집이 된 것 같았다. 불청객이 없는 진정한 나의 집.
그런데 기쁨도 잠시.
또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도 또! 부동산 규제였다.
일명 공포의 '10.15 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