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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ul 16. 2020

남편의 취미

나와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남편은 모으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집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지포라이터입니다. 지금은 더 모으지는 못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잘 관리하는 차원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지요.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으로 하나씩 하나씩 모았다고 합니다. 지포 라이터 중에서도 낙타가 등장하는 지포 라이터를 주로 모았더라고요. 물론 낙타가 없는 것도 있기도 합니다. 똑같은 그림의 라이터와 담배가 한 세트라고 하는데, 사용하지도 않는 라이터를 쌓아 놓는 것이 어떤 만족감이 있는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세계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보이는 것은 우표입니다. 우표는 지금도 한 달에 1~2번 우체국에서 등기우편으로 우표가 오고 있지요. 제가 우표수집에 살짝 관심을 가졌던 시절에는 우표를 발행하는 날  우체국에 일찍 가서 우표를 사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신청만 해 놓으면 자동으로  발행일에 맞춰 집으로 보내줍니다.  문제는 달마다 도착하는 우표를 남편은 봉투를 뜯지도 않고 그냥 쌓아 놓고 있습니다. 한 30여 개의 봉투가 책꽂이에 쌓여있을 때 저는 아들과 함께 가위를 들고 일일이 뜯어서 파일에 가지런히 정리를 하였지요. 그 많던 봉투가 파일 한 권에 모두 정리가 되고도 파일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올 때마다 정리를 하면 될 터인데 바빠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겠지요.


지난주 일요일 남편과 함께 남편 차로 움직이게 되었는데 차를 타기도 전에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마누라 놀라지 마"

이 말을 듣자마자 무서웠지요. 차에 뭐가 있길래 미리 선수를 치는 걸까?. 벌써 20년째 이 말을 듣고 있지만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말입니다. 다행히 이 물건은 자신이 산 것이 아니고 어제 만난 형님이 선물로 주셨다고 하는데 믿어야 할까요? 결혼 전부터 뭔가를 만날 때마다 주시는 분이거든요. 저와는 취향이 다르신 분이라 주실 때마다 부담감이 커지고 이 물건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고민을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번쩍번쩍 코끼리도 주시고 커다란 알람시계도 주시고...

뒷문을 열었습니다. 궤짝 같은 뒷면이 보였지요. 나무로 되어있는데 전기코드가 보입니다. 저건 뭘까? 하는 순간 남편이 라디오라고 말하네요. 이렇게 커다란 라디오는 처음인데, 이게 라디오라고...

"집에는 둘 곳이 없어. 그렇지 않아?."

"알았어 마누라 어머님 댁에 가져다 놓아야겠지!"

남편도 이젠 적당히 눈치가 생긴 것 같습니다. 바로 어머님 댁으로 가져다 놓는다고 하는 거 보니 말입니다. 저의 말에 순순히 반응해 주어서 사실 라디오가 생겼어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라면을 사러 간다던 남편은 라면이 아닌 라디오를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님 댁으로 안 갔다 드리고 왜 가지고 왔어?. 둘 데도 없는데..."

남편은 부엌 장식 장위에 올려놓으며 딱이라며 설치를 했고 저는 그냥 두고 보았습니다. 나무로 되어있어서 그런가 제자리를 잡으니 그럴듯해 보였거든요. 진공관 라디오라는데 듣는 순간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라디오라는데 라디오 소리가 아니었어요. FM 라디오를 맞추자 잘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이 들리는데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 한잔 하는 소리가 울리더라고요. 어쩌다 한 번은 우리 남편이 왕건이를 가져오는 날이 있구나.

   

오늘 아침 남편은 일찍 출근을 하고 저는 라디오를 틀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라디오에 흠뻑 빠진 걸 모릅니다. 아침에 TV를 안 보고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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