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erior color 잡지식 (2)_ 다양하고 미묘한 색상의 세계
우리나라 말에는 색상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양하고 많다.
예를 들면 파란색과 연관된 표현에는 파랗다, 퍼렇다, 푸르스름하다, 새파랗다, 시퍼렇다 등이 있고, 각각의 단어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직업 특성상 아주 섬세하고 유의 깊게 색상을 보는 일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색에 관한 시각적 스펙트럼이 훨씬 넓은 편이다.
내 눈에는 이것의 파란색과 저것의 파란색이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색깔 아니냐?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레이(gray)가 그리니쉬(greenish)하다.' 라거나, '노란색(yellow)이 너무 레디쉬(redish)한 방향인 것 같네요.'라는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데, 이런 이상한 표현들을 보더라도 컬러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색에 관해 상당히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블루, 그린, 레드와 같은 유색 계열은 그래도 색의 같고 다름을 비교하기가 그나마 용이한 편인데, 화이트와 블랙은 색차 구분이 더 어렵다.
블랙 같은 경우,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지만 실제로 각 브랜드별 블랙 컬러 시편을 한 데 모아서 보면 모두 다른 색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나 사진과 실제 샘플은 컬러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CMF업무는 대부분 컬러 시편으로 확인한다.)
새까만 블랙, 그레이시한 블랙, 블루감이 도는 블랙 등.
베이스가 다른 것도 이유지만, 같은 베이스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알루미늄 플레이크, 블랙 펄, 골드 펄, 실버 펄, 오로라 펄 등 어떤 입자를 첨가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블랙이 된다.
블랙에도 유행이 있다.
과거에는 빨간, 노란, 녹색 등 다양한 펄 색깔을 한 번에 때려 넣어서 화려하고 보이는 블랙을 사용했다면, 요즘에는 골드, 실버와 같이 단색 펄을 주로 사용해서 좀 더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의 블랙을 선호한다.
혹자는 별반 차이도 안 나는데 '그게 그거 아니냐?'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업무를 할 때도 많이 듣는 소리), 디자인 완성도는 정말 사소한 차이에서 결정된다.
때로는 우리가 예민하고 유난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디자이너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디테일에서 오는 완성도를 챙겨주지 않는다.
디자인이 집안일과 비슷한 점은 일을 해도 티 안 나는데, 안 하면 티 나는 그런 업무들이 많다는 것?
이렇게까지 색을 민감하게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자동차가 블랙 색상이라면, 차체에 붙는 모든 부품이 동일한 블랙이어야 한다.
그런데 부품마다 업체가 다르고, 도장 설비 및 도료 업체도 다르기 때문에 모든 부품이 같은 색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색상 차이가 없야 한다.
"이 정도면 비슷하네."라고 적당히 타협하고 넘긴 부품들을 나중에 완성차에서 봤을 때 이색으로 보이기 때문.
그래서 색을 확인할 때 우리는 색차값을 측정하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하고, 라이팅박스에서 여러 가지 조명 조건에 따라 색을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메탈 입자들이 포함된 자동차 외장 컬러들은 각도에 따라 색깔이 많이 달라 보여 모든 부품이 동일하게 보일 수 있는 일정 수준으로 색을 조정하고 맞추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내 차 색깔을 한 번 관찰해 보자.
단순히 흰색이라고 생각했던 색깔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란빛이 도는 메탈 입자들이 같이 보이거나 때로는 푸른빛이 보일 수도 있는, 생각하지 못했던 컬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