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요가의 좋은 점 (Feat. No 에어컨)
더위를 잘 안타는 나에게도 이번 여름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것 같은 무덥고 습한 날씨다.
한여름이라도 웬만하면 저녁쯤이면 조금 시원해지는데, 해 지고도 이렇게 더운 거 실화?
온난화 때문인지 정말 지구가 멸망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이런 날씨에도 우리 요가원은 No 에어컨 속에서 수련을 한다.
그래서 요가 갈 때는 그냥 나를 내려놓고 땀에 절어 올 것을 각오한다.
어차피 버릴 몸.
사실 땀이 극도로 없는 체질인 나는 오히려 한 여름 요가를 할 땐 그나마 땀이 나 개운한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은근 변태처럼 No 에어컨 요가를 즐기는 편.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땀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매트 위로 줄줄 흘렀다.
작년에도 이렇게 더웠었나?
돌이켜보니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요가를 했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고 생활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한여름에 어떻게 마스크 쓰고 요가를 했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때는 또 그런대로 적응해서 하긴 했을 텐데.
새삼 인간이란 참 간사한 망각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여름에도 요가를 하면서 '작년에도 이렇게 더웠었나?'라고 생각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지금 당장의 더위가 그렇게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힘든 순간들도 지나고 보면, '그때 그랬었나?' 싶은 일이 많은 법.
2년 전쯤이었나.
러닝 하러 한강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 날이 떠올랐다.
잠원에서 잠실을 찍고 돌아가려는 길에 비가 미친 듯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그칠 기미가 안 보여서 에라 모르겠다며 그냥 잠실에서 잠원까지 달려왔다.
머리부터 신발, 양말, 속옷까지 다 홀딱 젖어서 미친년이 따로 없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후련하고 좋았다.
어떤 운동이든 땀을 왕창 흘리고 에너지를 쏟은 후의 좋은 점은 그 순간에 하고 있던 고민들이 옅어진다는 것.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회사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함 등등.
뇌를 빡빡하게 채우고 있는 이런 복잡한 생각들은 '플랭크를 했을 때 내 몸의 좌우 균형이 맞는지, 다운독 자세에서 가슴을 또 너무 바닥으로 짓누르지 않았는지, 전사 3에서는 한 다리 발란스를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는지'와 같은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망각하게 된다.
땀을 물처럼 쏟아내며 내 몸과 몸의 움직임에 온전히 집중하는 90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사바사나 자세로 매트 위에 누워있으면, 내가 했던 고민들과 스트레스들 또한 지나가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무더운 날씨의 여름 요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여름 요가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겨울에 비해 확실히 몸이 빨리 풀린다는 것.
수족냉증인 나는 겨울에 몸이 풀리는데 한참 걸리는데, 삐그덕 대면서 최소 20분은 넘게 풀어야 딱딱하고 수축된 근육들이 느슨해진다.
반면 여름에는 이미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말랑말랑한 상태라 시작부터 뭔가 효율이 높아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여름 요가를 하면서 깨달은 점 하나.
여름에는 오히려 짧은 옷 보다 긴바지와 긴팔을 입는 게 더 낫다.
발목까지 땀이 송송 맺혀서 특히 암발란스 자세를 할 때는 이놈의 땀 때문에 살이 닿는 부분이 미끌미끌해서 동작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 번은 5부 바이크 팬츠를 입고 갔다가 무릎부터 땀 폭발로 미끌거려서 바카사나조차도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후로 여름에 요가 갈 때 5부 길이의 하의는 피하는 편.
아무튼 조금 덜 더웠으면 하는 생각과 그래도 여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너무 무더운 올해 여름.
남은 여름 동안 이 폭염을 즐기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요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