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가리 쌓인 마당

마당에서 시작하고 마당에서 떠나는 생

by 꼭두

노적가리 쌓인 마당

마당에서 시작하고 마당에서 떠나는 생


‘어느 집 노적가리가 제일 높은가?’


제가 낳고 자란 고향집은 참 마당 넓은 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집 우리 마당에서 경험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노적가리’입니다.


가을이면 추수를 하죠. 베어낸 벼 이삭을 묶어낸 볏단을 마땅 한 켠에 쌓아 올려요. 제 고향에서는 그걸 노적가리라고 불렀습니다. 탈곡을 하고 나면 벼 낟알로 다시 노적가리를 쌓아 올리는데, 무너지지 않고 버티며 서 있는 그 풍경이 참 장관이었죠.


아이들은 서로의 집 마당을 쳐다보며 비교를 하곤 했답니다.


‘어느 집 노적가리가 제일 높은가?’ 하면서요. 겉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 집 노적가리가 더 높으면 괜히 우쭐해지고, 비슷하거나 낮아 보이면 서운해지곤 했지요.


노적가리가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풍요를 드러내는 거라고 어른들이 말하곤 하셨는데, 어린 제게도 그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 수도요.


저희 집에 쌓아 올린 노적가리가 족히 40섬이 넘었으니, 그 촌 동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수십 마지기에 달하는 제법 넓은 논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히 노적가리도 다른 어떤 집보다 높은 편이었답니다.


수십 년 후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난 추석이면 너희 집 마당에 높이 쌓여있던 벼 노적가리가 참 부러웠단다”


금줄에서 환갑까지


요즘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라지요.


하지만 제가 80년 넘게 살면서 겪어내고 배워보니, 사람의 일생은 마당에서 태어나며 시작하고 마지막 순간도 마당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살던 시대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마당 앞 대문과 마당 한 켠 넓은 ‘장꽝’(제 고향에서는 장독대롤 장꽝이라고 불렀어요)에 ‘출산 금줄’이라는 걸 매어놓죠. 지금은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지만 숯, 솔가지, 빨간 고추 등을 꿰어놓은 새끼줄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금줄을 보면서 ‘아, 저 집에 아이가 새로 태어났구나’ 하는 거죠. 빨간 고추가 있으면 아들, 솔가지가 있으면 딸이구나 하면서.


백일, 돌, 생일잔치도 집 마당에서 합니다. 하지만 마당에서 하는 큰 잔치는 뭐니 뭐니 해도 혼례식과 환갑잔치입니다.


연출된 위 사진처럼 금줄에 솔가지와 붉은 고추를 함께 꿰지는 않는다


제 친정아버지 환갑잔치도 우리 집 마당에서 했어요.


그날이 되면 ‘채일’이라고 부르던 아주 큰 천막을 마당 복판에 세웁니다. 그 아래에 환갑상을 화려하게 차리고, 마당에는 가마솥 여러 개를 걸어놓고 불을 피웁니다. 돼지도 한 마리 통째로 잡아요.


사람들은 환갑상에 앉은 아버지에게 절을 한 후 이곳저곳 자리를 잡고 푸짐한 먹거리를 즐겼습니다.


온 동네 아낙들이 함께 부쳐내는 전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먼저 집어 가는지라 어른들 상에 올라오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온 마을 사람들이 고기와 국수, 떡과 떡국 등을 즐겼죠. 1박 2일 동안의 우리 아버지 환갑잔치 마당은 참 풍성했어요.


시댁 마당에서 진행된 제 시어머니 환갑잔치


혼례에서 장례까지


2년 후, 우리 아버지 환갑잔치를 했던 그 마당에서 제 혼례식이 열렸습니다.


큰 채일 아래 초례청을 차리고, 청실홍실을 이쁘게 감아놓은 초례상 앞에서 혼례식을 진행합니다.


혼례식 마지막 순서는 초례상에서 마주 보고 있던 닭을, 마당의 담장 밖으로 날려보내는 것이었어요. ‘멀리 날아가거라’ 하면서.


꼬꼬댁거리는 닭 울음소리와 뛰어오르는 날갯짓이 참 힘차다면서 어른들이 다들 덕담을 하더군요.


혼례식 잔치도 국수와 떡 등 먹거리를 즐기는 순서가 이어지지만, 환갑잔치와는 다르게 1박 2일까지는 아닙니다. 자정 무렵이 되고, 새 신랑과 새 신부가 첫날밤을 치루는 신방의 불이 꺼지면 다들 흩어지지요.


마당에서 열리는 예식 중 여러 날에 걸쳐 제일 길게 진행하는 게 장례식입니다.


제가 혼례를 치른 지 3년이 지난 후, 우리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아버지가 5년 전 환갑잔치를 치렀고, 제가 3년 전 혼례식을 치렀던 그 마당에서.


3일 동안 모닥불을 피워놓고 진행됐던 그 장례식은, 마지막 날 꽃상여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장엄하게 이어졌답니다.


지금은 고향집 그 마당이 없어졌어요.


우리 친가 중 지금까지 살아있는 가족은 저와 여동생 한명뿐이고, 저는 서울에, 동생은 미국에 살고 있죠.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꽃밭과 텃밭이 있고, 소와 돼지 축사, 닭 우리가 있고, 큰 장꽝이 있던 고향집 큰 마당이 아득히 그립습니다.


마당 넓은 집에서 다시 살고 싶어요.


1960년 3월 1일, 우리 집 마당 초례청에 새 각시로 선 저와 제 새 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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